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지수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한국 주식시장이 선진국 지수 편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신흥국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23일 글로벌 대표 지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2004년 한국이 MSCI 신흥국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67%로 1위였지만, 올해 기준으로는 중국(24.42%), 인도(19.9%), 대만(18.77%)에 밀린 4위로 떨어졌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신흥국 지수 비율은 18.67%에서 11.67%로 7%포인트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대만 비율은 11.91%에서 18.77%로 6.86%포인트 증가했다. 한국과 대만의 위상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같은 기간 중국은 8.46%에서 24.42%로, 인도는 4.93%에서 19.9%로 수직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인도에 밀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경제력이 우리나라보다 작은 대만에 추월당한 것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미·중 갈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을 피하려 중국을 떠난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이 아닌 대만과 일본으로 대피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증시가 존재감을 잃어가는 것은 무엇보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처럼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차세대 기업들을 키워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증시에선 삼성전자가 2000년부터 25년째 시가총액 1위를 유지할 만큼 산업 역동성이 떨어진 상태다. 반면 대만에선 아이폰 생산 업체인 폭스콘에서 반도체 기업 TSMC로 주도주가 옮겨 갔고, 인도에서도 릴라이언스를 비롯한 IT 업체와 금융사들이 약진하고 있다.

그래픽=정인성

정부가 바뀔 때마다 투자 관련 정책이 일관성 없이 바뀌는 불확실성도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에 한국 증시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한국 정부가 공매도 전면 금지를 시행한 점, 내년을 불과 석 달여 앞두고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점 등이 정책 불확실성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마경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인데, 우리는 정부 정책부터 불확실성을 키우며 투자자들의 혼란과 불안 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MSCI 지수는 크게 선진국 시장(DM), 신흥국 시장(EM), 프런티어 시장(FM) 등 3가지로 나뉜다. 신흥국 시장에 속한 한국은 지난 2008년부터 여러 차례 선진국 시장 편입을 시도해 왔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돈을 벌어줄 수 있는 곳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데, 한국 주식시장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이 경제 성장에 걸맞은 수익률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다는 것이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기금(APG) 전무는 “한국 시장은 저평가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자본시장에서 평가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며 “코스피가 만약 GDP(국내총생산)가 성장한 만큼 상승했다면 지금 지수가 (2000대가 아니라) 6000을 넘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포털 사이트 인베스팅닷컴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4년 1월부터 지난 20일까지 대만 자취안 지수는 248% 상승했고, 1인당 GDP는 12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도 니프티 50 지수와 1인당 GDP 상승률은 각각 1325%, 339%였다. 반면 한국의 코스피는 206%, 1인당 GDP는 1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 증시나 1인당 GDP 성장 속도가 대만·인도보다 떨어진 것이다.

올해는 신흥국 시장에서 한국 소외 현상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 금리가 높을 때는 선진국 증시가, 금리가 낮을 때는 신흥국이 활황을 보인다. 지난 18일 미국의 빅컷(기준 금리 0.5%포인트 인하) 이후 글로벌 투자 자금이 고위험을 감수하고 수익성이 높은 신흥국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은데, 한국보다는 대만을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대만 주식시장은 선진국의 안정성과 신흥국의 수익성이란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반면, 한국은 어중간한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