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화장품, 통신·지주는 단 한 종목도 포함이 안 되었어요. 밸류업이 아니고 밸류’옆’인가 봅니다.”(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 A씨)

25일 국내 증시에선 전날 발표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 100종목에 입성한 합격주(株)와 탈락주(株)의 명암이 교차했다. 이날 2차전지 소재 업체인 에코프로에이치엔이 장중 28%대 오른 것을 비롯, 한진칼(15%)·엔씨소프트(3%) 등 예상치 못했던 밸류업 합격생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밸류업 지수 내에서 상승한 종목 비율은 58%였다. 코스피나 코스닥의 상승 종목 비율(38%, 47%)보다 높아 선방했다. 반면 시장 예상을 뒤엎고 지수 리스트에서 빠진 KB금융·하나금융과 삼성증권·NH투자증권, KT, SK텔레콤, CJ, SK 등의 종목들은 하락을 면치 못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산업 구조를 전부 반영하려다 보니, 주주 가치를 중요시하는 기업들을 지수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코스피200 등 기존 지수와의 차이도 크지 않아 증시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PBR 4배 넘는 고평가 기업 17곳

증시에서 저평가 여부를 따질 때 잣대로 삼는 것이 주가순자산비율(PBR)이다. PBR은 주가를 장부 가치로 나눈 것인데, 1배 미만이면 주가가 청산 가치 미만이란 뜻이고 숫자가 높을수록 고평가되었다는 의미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구성하는 100종목의 PBR은 2.6배다. 기존에 있던 지수인 코스피200의 PBR(2배)보다도 높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밸류업을 저평가 가치주, 즉 저PBR 관점에서 생각하는데,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이미 시장에서 제값 이상인 고PBR 종목을 우선순위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iM증권에 따르면, 밸류업 100종목 중 PBR이 4배가 넘는 종목은 17개에 달한다.

그래픽=김현국

2년 연속 배당을 했는지 여부만 따지면서 밸류업 지수의 배당 수익률(2.2%)이 코스피200(2.3%)보다 낮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평균 배당 수익률이 0.1%인 기업과 5%인 기업이 모두 합격하고, 자사주 소각도 실시했는지 안 했는지만 따지고 규모는 보지 않는 바람에 변별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밸류업 지수 편입에 실패한 상장사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역발상 의견도 나온다.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꼭 들어갈 것이라고 봤던 일부 유력 후보가 밸류업 100 리스트에서 빠지면서 ‘평판 리스크’에 직면했다”면서 “이 기업들이 (내년엔 편입되려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 친화책을 펼치면 오히려 주가 상승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7월 출시된 일본판 밸류업 지수(JPX프라임150)에 일본 증시 대장주(株)인 도요타 자동차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대거 탈락했다. 도요타 자동차는 지수 편입을 목표로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 환원 정책을 활발히 펼쳤고 1년 후인 지난 8월 비로소 편입됐다.

그래픽=김현국

✅증권가 “추종 자금 3000억~1조 예상”

투자자들의 관심은 앞으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이 얼마나 모일 것인지에 쏠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는 11월 초에 밸류업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들이 상장될 예정이다. 당초 여의도 운용업계에선 1조원 전후 패시브(지수 추종) 자금이 유입되면서 밸류업 종목 주가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과거 관제 테마 상품을 살펴보면 실제 규모는 예상보다 작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에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등 유망 산업 4개를 모아 만든 ‘BBIG K-뉴딜지수’가 대표적이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당시 K-뉴딜지수를 추종하는 신규 ETF는 5개 출시됐는데, 약 3000억원의 자금이 모였다.

하지만 뉴머니(새 돈)가 유입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기존에 투자되어 있던 돈으로 종목을 갈아타기만 할 뿐이라면, 증시 활성화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증권사 임원 B씨는 “연기금·공제회 등 큰손들이 밸류업 상품에 투자하려면 벤치마크(운용 성과 평가 기준)를 바꾸거나 아예 새 유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그러기엔 부담이 있어서 자금 유입 속도는 더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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