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초부터 추진하고 있는 밸류 업(기업 가치 개선)에 모범적인 기업 100곳을 선정한 ‘코리아 밸류 업 지수(이하 밸류 업 지수)’가 24일 베일을 벗었다. 이 지수는 30일부터 도입된다. 밸류 업 지수에는 시가총액뿐만 아니라 수익성, 주주환원 등 다양한 조건을 만족한 100종목이 포함됐다.
시가총액 10위 기업 중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KB금융, 포스코홀딩스 등 4곳이 탈락한 가운데, 현대차·신한지주 등은 기준엔 미달했지만 기업 가치 개선 계획을 자진 공시해서 턱걸이로 지수에 포함되기도 했다.
◇희비 엇갈린 기업들
한국거래소는 24일 밸류 업 지수의 선정 기준과 구성 종목을 발표했다. 기존에 증시에서 밸류 업 수혜주는 금융·자동차 업종에 집중됐었는데, 이날 나온 밸류 업 지수에는 예상을 깨고 정보기술(IT), 산업재 기업도 다수 포함됐다. 거래소 관계자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시가총액, 수익성, 주주 환원, 주가 순자산 비율(PBR), 주가 수익 비율(ROE) 등을 따졌다”며 “특정 산업군에 편중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고르게 편입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준엔 미달돼도 미리 기업 가치 개선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은 특례 적용을 받아 지수에 들어갔다. 시가총액 5위인 현대차와 신한지주·우리금융지주·미래에셋증권 등 일부 금융사가 이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시가총액 3위와 4위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주주 환원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 탈락 요인이 됐다. 금융 대장주인 KB금융은 주주 환원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PBR이 낮아 탈락했다. SK텔레콤, KT 등 통신사는 전부 들어가지 않았다.
이에 선정 잣대가 모든 기업에 공정하게 적용됐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삼성전자가 지수에 포함될 만큼 밸류 업에 진심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밸류 업 주목 기업이었던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가 아직 밸류 업 공시를 하지 않았다고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부연 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 상무는 “2026년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기업도 밸류 업 공시를 하지 않으면 지수에서 빠진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매년 한 번 지수 구성 종목을 재평가할 예정이다.
◇증권가 “과한 기대는 금물”
이번 밸류 업 지수 선정에서 탈락한 기업들이 밸류 업에 더 공을 들이고, 선정된 기업들은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가 완화되고 주가도 오를 수 있을지가 시장의 관심사다.
거래소에 따르면, 밸류 업 지수를 과거로 소급해서 최근 5년 수익률을 따져봤더니 43.5%였다. 이는 같은 기간 200개 우량 기업의 주가로 만든 코스피200 지수의 상승률 33.7%보다 높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밸류 업 지수가 주가 상승 효과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대체로 신중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초부터 밸류 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반영돼왔다”며 “기업 가치 제고에 긍정적 변화는 맞지만, 단기간 드라마틱한 변화를 야기하는 그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의 ‘큰손’인 연기금이 밸류 업 지수의 지원에 나설지도 주요 변수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연기금이 향후 어느 정도 밸류 업 종목을 매수하거나 밸류 업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는지 등이 밸류 업 지수 효과가 나타날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밸류 업 지수는 장 마감 후 발표했다. 그럼에도 이날 밸류 업 지수에 포함된 100종목 중 81종목이 올랐다.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이 대부분이 상승세를 타는 종목이었다는 뜻이다. 특히 코스닥 종목인 소재 전문 기업인 에코프로에이치엔(9.15%), 연예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7.53%)의 상승률이 높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밸류 업 지수는 기업이 밸류 업 정책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뒤따라가면서 측정하는 후행 지표”라며 “앞으로 지수 편입 기업들이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실적을 보여주는지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는 이날 오는 11월에는 밸류 업 지수를 활용한 지수선물과 상장지수펀드(ETF)도 상장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