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왼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제공

이 기사는 2024년 9월 30일 11시 06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고려아연이 2조원대 중반에 달하는 현금을 준비해 놓고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자사주 매입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바로 시장에서 자사주를 사들여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군의 공개매수 저지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베인캐피탈의 자금 지원 여부가 미지수로 남아있는 만큼 고려아연 입장에서 자사주 매입은 결정적인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유동자산(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과 비유동자산 일부를 현금화해 실탄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규모는 2조원대 중반 안팎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은 원래부터 보유 현금이 많은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고려아연의 유동자산은 4조4543억원에 달했다. 그중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1630억원, 단기 금융기관 예치금이 1530억원, 단기투자자산이 9000억원이었다.

회사는 늘 보유해야 하는 500억원 안팎의 운영 자금을 제외하고도 2조원대 중반 내외의 현금을 마련했는데, 이를 위해 6조원이 넘는 비유동자산 가운데 일부도 현금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의 2조원대 실탄은 자사주 매입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고려아연은 자사주 2.4%를 보유하고 있는데, 시장에서 유통 가능한 물량 22.9% 중 일부를 자사주 형태로 더 사들이는 것이다.

최 회장 측은 자사주를 비싼 값에 추가로 취득하면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MBK와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 6.98~14.61%에 대한 공개매수를 추진 중이다. 주당 가격은 75만원이다. MBK-영풍이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14.61%를 취득하고 고려아연 지분 1.85%를 들고 있는 영풍정밀까지 인수한다면, 연합군은 고려아연 지분 49.59%를 확보하게 된다.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 기준으로는 과반인 50.82%를 확보하는 구조다.

그러나 만약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추가로 사면 이 같은 계산이 깨지게 된다. 자사주가 5% 더 늘어나 7.4%가 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자사주와 국민연금 지분(7.6%)을 뺀 나머지 지분은 85%가 된다. 자사주 7.4%는 사실상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MBK-영풍이 과반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주식 수는 더 늘어나게 된다.

고려아연은 자사주를 추가 취득해 제3자에게 넘겨서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주가 자사주 상태로 남아있을 땐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 넘기면 의결권을 갖게 된다. 때문에 경영권 분쟁 중 우호 세력에 자사주를 넘겼을 경우, 이는 백기사 지분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자사주 1.2%를 한화 자사주 7.3%와 맞교환한 바 있다. LG화학과도 이런 방식으로 동맹을 맺었다. 고려아연 자사주 1.97%와 LG화학 자사주 0.47%를 맞교환했다.

한화그룹은 고려아연의 대항 공개매수에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했지만 배임 소지가 있어 접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카드는 사용 가능하다.

고려아연은 현재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앞서 지난 27일 영풍 측이 최 회장 측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의 1차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영풍과 계열 관계로 묶여있는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영풍의 공개매수 기간 동안 자사주를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과의 특별관계가 해소된 만큼 자사주 취득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법원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자사주 취득에 나서는 동시에, 대항 공개매수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MBK-영풍의 공개매수를 저지하려면 늦어도 다음 달 2일에는 대항 공개매수를 시작해야 하며, 그러려면 물리적으로 30일까진 자금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백기사 후보로는 베인캐피탈, 메리츠증권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