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이지만 이것저것 제하면 월 600만원 정도라 청소년 둘 키우기도 빠듯합니다. 세금이 자꾸 늘어서 역사책에서만 보던 가렴주구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실수령 600만원 정도면 한국 사회 먹이사슬에선 최상위 계층 아닌가요? 세금으로 왕창 뜯겨도 좋으니, 저도 억대 연봉 한 번 받아보고 싶네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억대 연봉’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40대 직장인이 ‘세금과 건보료 등으로 나라에서 빼가는 돈이 많아 연봉 1억을 받아도 실제 손에 남는 건 없다’는 주장을 펼치자, ‘가진 자의 푸념’, ‘세금 아까우면 이민 가라’ 등 날카로운 반박이 이어졌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은 꿈꿔 보는 ‘억대 연봉’.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지만 정작 억대 연봉자 중 상당수는 “기대했던 것만큼 삶이 풍족하지 않고 마치 신기루 같다”고 호소한다. 50대 회사원 이모씨는 “40대 초반에는 억대 연봉을 받을 지위가 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는데, 세금으로 반을 뚝 떼어 가니 결국 제자리”라며 “아파트 대출금 갚고 노후 대비로 일부 떼어두면 정말 살기 빠듯하다”고 말했다. 고소득자가 되었는데 오히려 더 가난해진다고 느끼는 연봉의 역설은 왜 발생하는 걸까.
✅매년 최고치 경신하는 억대 연봉자
“남편이 대기업 다니고 계약 연봉 1억원인데, 노후 대비는 전혀 할 수 없다고 지인이 엄살을 떠네요.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얼마인데 그러는 걸까요?”
직장인들의 꿈인 ‘억대 연봉’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다. 억대 연봉자는 매년 늘고 있어 예전보다는 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체 근로자의 6.4%(131만7000명)만이 속하는 소수 집단이다.
그렇다면 연봉 1억원을 받는 직장인은 매달 실제로 얼마나 집으로 가져갈까? 개인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연봉 1억원인 외벌이 4인 가족의 경우 근로소득세,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고용보험료 등을 모두 제하고 나면 실수령액은 월 680만원 정도다.
40대 주부 황모씨는 “올해 남편 연봉이 1억1000만원으로 오른다고 해서 기뻤는데 연봉 9000만원일 때랑 월 100 정도 차이라서 실망했다”면서 “아무리 억대 연봉을 받아도 흙수저는 계속 삶이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억대 연봉자 김모씨도 “(억대 연봉이면) 살 만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세금을 많이 내니까 실감이 안 난다”면서 “자녀 교육비에 부모 간병비까지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서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17년째 그대로인 ‘8800만원의 벽’
억대 연봉자들이 내는 세금도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찍고 있다. 국가가 억대 연봉자 월급에서 다달이 떼어간 근로소득세는 2022년 기준 약 37조원이었다. 전체 근로소득세의 3분의 2에 달한다.
납세자들은 지난 2008년 만들어진 과표 구간이 바뀌지 않아 사실상 ‘자동 증세’가 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동안 소득이나 물가가 크게 높아졌는데, 세제가 그런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않아 유리지갑인 월급쟁이의 실질적 세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소득세법은 과세표준 구간이 8단계이고, 6∼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한다<위 그림 참고>. 과표 구간 5000만~8800만원 이하는 24% 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8800만원을 초과하면 11%포인트 이상 높아져 35~45%의 높은 세율이 부과된다. ‘8800만원’을 경계선으로 세금 부담이 무거워진다.
8800만원 기준은 지난 2008년부터 17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통계청의 화폐가치 계산기를 활용해서 2008년의 8800만원을 현 시점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2500만원이다.
즉 2008년에 소득세 과표가 8800만원인 근로자 X와 2024년 소득세 과표가 1억2500만원인 근로자 Y는 물가를 고려한 실질 과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X와 Y가 내는 근로소득세는 각각 900만원, 1920만원으로 차이가 난다. 세율은 그대로인데 명목임금이 높아지는 바람에 내야 할 근로소득세가 늘어났다.
✅근소세 16년간 연평균 10% 늘어
근로소득세는 월급, 상여금, 수당 등에 부과되는 세금(6~45%)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할수록 월급은 오르고, 많이 번 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근로소득세의 증가율이 다른 세목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건 문제다.
1일 안도걸 의원실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근로소득세는 지난 2008년부터 16년 동안 연평균 9.6%씩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같은 기간 가계소득의 연평균 증가 속도(4.5%)나 법인세 연평균 증가율(4.9%)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심지어 근로소득세는 올해 세정 역사상 처음으로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보다도 많아질 전망이다. 안도걸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수입 추정은 약 64조7000억원으로, 법인세(63조2000억원)를 추월하게 된다. 전체 국세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08년 9.3%에서 올해는 약 19%로 두 배로 늘어난다.
안도걸 의원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국세는 연평균 4.9%씩 증가한 데 반해, 근소세는 같은 기간 2배 이상 큰 폭으로 증가했다”면서 “가계의 소득 증가 속도에 견줘도 소득세는 가파르게 오른 측면이 있는 만큼, 세 부담 증가 속도 조절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위 1%의 소득세수 비중 42%
“돈은 내는데 (회사일로 바빠서) 혜택은 다 남들이...”(대기업 직장인 이모씨)
한국은 전체 근로자의 6.4%인 억대 연봉자들이 전체 근로소득의 62%를 부담하는 기형적인 세수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2022년 기준으로 총 690만명에 달하며, 전체 근로자의 33.6%를 차지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세제의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연말정산을 하는 근로자 10명 중 3명은 각종 공제 혜택을 받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는 공제 축소 등 제도 개선을 통해 면세자 비율을 계속 줄여 나가고 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6월 펴낸 ‘제22대 국회 조세정책 개선과제’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면세자 비중은 미국 31.5%(2019년), 일본 15.1%(2020년), 호주 15.5%(2018년) 등으로 한국보다 낮았다.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이 높다는 것은 소득세를 내는 상위 계층의 부담이 그만큼 무겁다는 의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소득(근로소득+종합소득) 상위 1%가 부담하는 소득세수 비중은 42%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근로소득세 과표 8800만원을 초과하는 구간에 속하는 근로소득자들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 부담 비중은 2016년 42%에서 2021년 50.9%로 매년 상승 중”이라며 “향후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물가 상승이 명목임금 상승으로 전이될 경우, 소득세 상위 집중도는 더욱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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