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0월 2일 16시 3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군의 분쟁 2차전이 막을 올렸다. MBK-영풍의 공개매수 기간 중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자격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고, 이에 최 회장 측에서 즉각 2조7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 계획을 발표했다.
MBK-영풍 연합군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자사주를 고가에 사는 것이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고려아연은 당장 자사주 공개매수에 착수할 수 있지만, 만약 2차 가처분에서 재판부가 MBK-영풍의 손을 들어준다면 자사주 매입은 무효화된다. 관건은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83만원에 공개매수하는 게 배임죄에 해당하느냐 여부다.
◇ MBK 75만원보다 높은 ‘83만원’ 제시… 베인캐피탈과 손잡아
2일 투자은행(IB) 및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MBK-영풍의 공개매수 기간 동안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달 13일 MBK-영풍은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과 박기덕·정태웅 대표,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주체인 영풍의 특별관계자이기 때문에 영풍의 공개매수 기간 동안 자사주를 살 수 없다는 취지였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40조는 “공개매수자 및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공고일부터 종료일까지 공개매수에 의하지 않고는 그 주식을 매수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별도 매수 금지 의무’라고 한다.
재판부는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가 경영권 분쟁을 시작한 이상 영풍을 고려아연의 ‘공동보유자’로 보긴 어렵다고 봤다. 공동보유자는 특별관계자의 일종이다. 계약이나 합의로 주식을 공동 취득하기로 했거나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기로 한 사람이나 법인을 뜻한다. 이날 법원은 “영풍과 고려아연이 주식 등을 공동으로 취득하거나 처분하는 행위, 취득한 주식 등을 상호 양도하거나 매수하는 행위,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행위 등에 관해 명시적인 합의를 한 사실이 없다”고 판시했다. 즉 영풍과 고려아연이 공동보유자가 아닌 이상, 영풍이 공개매수를 하는 동안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게 문제가 안 된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고려아연은 이날 재판부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공개매수안을 결의했다. 주당 83만원에 총 15.5%를 사들이기로 했다. 매입 규모는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자사주를 공개매수한 뒤 전량 소각하겠다는 계획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자진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자사주를 공개매수한 사례는 있었어도, 대항 공개매수를 목적으로 한 자사주 공개매수는 없었다”면서 “이번이 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통상 자사주 취득은 증권사와의 신탁계약을 통해 장내에서 이뤄진다. 법인이 증권사에 미리 돈을 맡겨 놓고 시장 가격으로 사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이번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단가를 83만원으로 고정해 놓고 장외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 외에도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탈이 이번 경영권 분쟁에 참전, 4300억원을 들여 주당 83만원에 지분 2.5%를 공개매수하기로 했다. 즉 고려아연(자사주)과 베인캐피탈이 총 3조1000억원을 투입해 지분 18%를 취득한다는 게 목표다.
MBK-영풍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법원에 또 다시 가처분 신청을 내며 2차전을 시작했다. 이번 2차 가처분 신청의 골자는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결의가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해하는 배임 행위”이기 때문에 중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아침 판결이 난 가처분의 재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자신들의 공개매수를 성공시키려는 의도인데, 투자자들이 잘 파악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맞받아쳤다.
양측은 또 한 번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20일) 동안 법원이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만약 법원이 MBK-영풍의 2차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도중에 중단된다.
◇ “83만원이 고가? 실질가치 봐야… MBK 단가도 원래 주가보다 높아”
MBK-영풍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배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사주를 살 것이라면 신탁 계약에 의한 매수 방식으로 시가로 매수하면 되는데, 굳이 고가에 매수하는 것은 회사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MBK 관계자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소각되는 자사주 취득 금액만큼 자기자본이 감소하게 된다”며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은 가격인 주당 80만원대에 자사주를 매수해 소각한다면, 공개매수 이전 주가 기준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하는 것보다 40% 더 자기자본이 줄어드는 효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공개매수가 종료되면 원래 시세(주당 55만원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나온 추산이다.
그러면서 “이 경우 회사의 부채비율에도 악영향이 있으며, 미래의 주주에 대한 배당 가능 이익의 재원도 줄어들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회장 측은 83만원이 ‘고가’라는 전제 자체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현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83만원이 비싸다고 주장하려면 주식의 실질가치, 본질가치를 알아야 하는데, 영풍은 회사를 실사한 적도 없으면서 본질가치를 어떻게 알고 83만원이 비싸다고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조 변호사는 MBK-영풍 역시 원래 시세보다 높은 66만원에 공개매수를 시작해 단가를 75만원까지 높였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도 “공개매수가 끝난 뒤 주가가 떨어진다면, 그건 시장에서의 거래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지 실질가치가 하락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83만원에 공개매수한 뒤 원래 시세인 55만원대로 떨어지더라도, 주식의 본질적 가치가 하락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배임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얘기다.
◇ “자사주 비싸게 사서 주주환원하는 게 배임인가?”
83만원이 ‘고가’라고 하더라도, 자사주를 이 가격에 매입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게 맞는지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최 회장이 회삿돈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자사주를 주주들로부터 비싸게 매입해 줘서 주주들에게 이익을 환원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배임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MBK 고위 관계자는 “모든 주주를 위해 평등하게 비례적으로 감자를 해준다면 몰라도, 지금 이 경우는 자사주를 일부만 사주겠다는 것”이라며 “모든 주주가 신청할 기회는 있지만 83만원에 팔 기회를 갖는 건 아니기 때문에 주주환원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즉 자사주를 83만원에 팔지 못한 주주는 공개매수가 종료되고 나면 과거보다 더 악화된 재무 상태를 넘겨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은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는 것 자체가 배당과 비슷한 효과를 갖는 주주환원책이라고 반박한다.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재무 상태가 악화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자사주를 고가에 매입하는 게 최 회장의 사익을 위한 배임 행위라는 MBK-영풍 측 논리에 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