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9월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며칠간 가상자산 시장이 강세를 보였지만, 국내에서 발행돼 유통되는 코인, 이른바 ‘김치코인’은 상승세를 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후 상장 적격성 심사가 강화되면서, 시세 조종 위험이 크고 쓰임새가 적다는 지적을 받는 김치코인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일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빗썸에서 김치코인 중 하나인 에이피엠 코인은 전날보다 3% 하락한 4.73원에 거래되고 있다. 에이피엠 코인은 서울 동대문에 기반을 둔 의류 도매 기업인 에이피엠 그룹이 발행하는 가상자산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동대문 코인’으로도 불린다.
지난달 19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단행할 때 이 코인은 4.9원대에 거래됐었다. 이후 열흘 넘게 별다른 움직임 없이 횡보하다 오히려 당시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반면 연준의 빅컷 결정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은 대부분 가격이 며칠간 상승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빅컷이 결정되기 전 가격이 8000만원을 밑돌았지만, 지난달 28일에는 가격이 8700만원을 넘어섰다. 이더리움과 솔라나, 리플 등 주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도 빅컷 이후 지난달 말까지 두자릿수의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달 상승장에서 소외된 김치코인은 에이피엠 코인뿐이 아니다. 트루스트체인이란 국내 블록체인 업체가 발행하는 마일벌스도 연준의 빅컷 결정 당시 6원대를 기록했지만, 이날 현재는 이보다 낮은 5.8원에 거래되고 있다. 빗썸에 상장된 또 다른 김치코인인 이브이지도 빅컷 이후에도 가격이 제자리걸음을 하다 최근 하락 폭이 커졌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게임 관련 코인도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게임 제작사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하는 가상자산인 위믹스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나오던 시점보다 낮은 1098원에 거래되고 있다. 컴투스가 발행하는 엑스플라와 넷마블의 마브렉스는 빅컷 이후 며칠간 상승했지만, 최근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여러 김치코인이 반등장에서도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난 7월부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국내에서 발행된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냉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법은 국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가상자산에 대해 정기적으로 적합한 절차를 거쳐 상장됐는지 여부 등을 심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국내 모든 거래소는 중복된 종류를 제외하고 총 600여종의 코인에 대한 심사를 진행 중이다. 만약 상장 적격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되는 코인이 나올 경우 상장이 폐지될 가능성이 크다.
시세 조종 등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점도 김치코인이 외면을 받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최근 상승장에서 소외된 주요 김치코인 가운데 상당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기 전 별다른 이유 없이 며칠간 가격이 크게 오르다 떨어진 적이 있다.
에이피엠 코인의 경우 지난 5월 말 가격이 7.2원선에서 움직였지만, 불과 이틀 만에 세 배에 가까운 19.5원까지 급등했다. 마일벌스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가격이 4원대에서 35원대로 이상 급등했다. 이브이지도 지난 5월 28일 하루에만 가격이 전날보다 94% 넘게 오르며 시세 조종의 표적이 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대부분의 물량이 국내에서 거래가 되는 김치코인은 글로벌 거래소에 상장된 주요 가상자산에 비해 유동성이 낮고 시가총액 규모도 작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작전 세력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김치코인 10개 중 9개에서 가격이 급등했다가 떨어지는 ‘펌프앤덤프’로 추정되는 사례가 나타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와 중국의 경기 부양책 발표 등 호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원을 약속하면서 시장 전체의 투자심리도 개선된 상황이다.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잇따른 호재로 시장에 다시 유입되고 있는 투자 자금이 주로 이미 검증된 주요 코인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금(金)으로 취급되는 비트코인이나 보안 기능이 높은 이더리움, 솔라나 등은 투자가 살아나고 있지만, 김치코인의 경우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데다 쓰임새도 검증돼 있지 않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김치코인은 평소 더 많은 차익을 얻으려는 소수의 투자자 외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상폐 위험까지 커진 상황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김치코인에 투자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