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진영

수원에 사는 최모(82)씨는 한 명밖에 없는 중학생 손자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최씨가 10년 뒤 사망한다면 아들이 60세를 넘는데, 은퇴할 아들보다 손자에게 직접 지원을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최근 낮은 출산율로 손자·손녀가 귀해지고 고령화로 노노상속(老老相續)이 늘어나면서 최씨처럼 조부모 세대가 손주 세대로 재산을 직접 주는 ‘세대생략증여’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었다.

그래픽=이진영

◇세대생략증여 확산

세대생략증여란 부모가 자녀를 건너뛰어 손주에게 직접 재산을 물려주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그리고 자녀가 손주에게 2세대에 걸쳐 재산을 물려주는 것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세대생략증여에 앞서 알아둘 점이 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세대생략증여에 할증률 30%를 적용한다. 만약 물려받는 사람이 미성년이고, 증여하는 재산의 가치가 20억원을 넘는다면 이보다 높은 40%를 적용한다. 다만, 할증이 적용돼 세금이 1.3배가 되지만, 세금을 두 번 납부하는 것보다는 이득이므로 절세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 또 자녀에게 10년 이내 이미 많은 재산을 증여했다면, 누진세율(10~50%)이 적용되므로 손주에게 직접 증여하는 게 경우에 따라 세금을 더 아낄 수 있다. 증여 대상이 부동산이라면, 명의 이전을 한 번만 하면 돼 취득세 절세 효과도 볼 수 있다.

상속 계획을 설계하는 데도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재산을 물려주는 할아버지 본인이 사망할 경우, 배우자(할머니)나 자녀(아버지)에게 사전에 증여한 재산은 10년까지 소급해 상속재산으로 합산해 과세한다. 반면 손주에게 미리 증여한 재산은 5년까지만 소급 적용된다. 상속 시점을 미리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상속세 절세를 위해 5년 단위로 과세 대상 재산을 미리 분산할 수 있는 것이다.

세대생략증여 과정에서 발생한 증여세는 수증자, 즉 손주가 납세 의무자다. 보통 손주가 납입 여력이 없어 증여세까지 대납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조부모보다 부모가 증여세를 대신 내는 것이 유리하다. 증여세 대납분에 대해서도 세대생략증여 할증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1세 미만 주주 증가

최근에는 손주가 어릴 때 가능한 한 빨리 사전 증여를 시작하는 것에도 관심이 높다. 세법이 허용한 기간 내에 증여 공제 한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돌도 채 안 지난 ‘1세 미만 주주’들이 증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계획을 잘 세우면 손주가 성인이 되는 21세까지 최대 9000만원을 증여세 없이 증여하는 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첫해 2000만원 증여, 11세에 2000만원 증여, 21세에 5000만원을 증여하는 식이다.

목돈 일시 증여가 부담되는 경우에는 ‘유기정기금(有期定期金) 증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 매달 일정액을 증여하기로 사전에 계약을 한 뒤, 과세 당국에 신고해 계약에 따라 매달 증여하는 방식이다. 유기정기금 증여 신고액에 대해서는 정부가 연 3%의 할인율을 적용해주므로 더 많은 금액을 비과세로 증여할 수 있다. 이 할인율을 적용하면 수증자가 미성년인 경우 10년간 2268만원(월 18만9000원씩), 성년의 경우 5640만원(월 47만원씩)까지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다. 유기정기금은 최초 입금일을 증여일로 간주하기 때문에 공제 한도는 최초 입금일로부터 10년 뒤 다시 시작된다. 최근에 국내 증권사들은 미성년 손주 사전 증여 투자 확산을 위해 앞다퉈 미성년 자녀 대상 주식 서비스 계좌 개설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도 주목

고령화와 가족 관계가 다양해지면서 최근에는 유언대용신탁도 주목받고 있다. 고객(위탁자)이 금융기관(수탁자)과 생전에 신탁계약을 맺고 배우자나 자녀(수익자) 등에게 자산을 이전하는 금융 상품이다. 유언장에 비해 재산을 물려주고자 하는 사람의 의사를 반영한 구체적인 상속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특히 ‘수익자 연속신탁’으로 설계하면 위탁자가 수익권을 연속으로 지정할 수 있다. 본인 생존 기간 동안은 자신에게, 사후에는 아내·자녀·손주 등에게 수익권을 순차적으로 넘길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유언장에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다만 유언대용신탁 계약 시 계약 내용이 상속인의 유류분을 침해하는지는 미리 신경 써야 한다. 유류분반환청구 소송과 관련한 법원의 판단이 아직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 사후 상속인 간 쟁점이 될 수 있는 내용은 미리 점검해 사후 분쟁을 방지하는 것이 좋다.

◇종신보험도 활용

자산 승계와 절세까지 동시에 가능한 종신보험 계약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선 할아버지 최씨가 계약자와 수익자가 되고, 최씨 아들을 피보험자로 하는 종신보험계약을 체결한다. 생전 보험료는 최씨가 납부하다 이후 최씨 사망 시점에 계약자와 수익자를 손자 명의로 변경하도록 설계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아들에게 해당 절차와 관련된 동의를 받아둬야 한다. 이렇게 하면 최씨 사망으로 상속이 일어나는 시점에 해당 보험 계약은 손자 명의로 상속되고, 손자는 상속 당시 보험 평가액에 대해 상속세를 납부하게 된다. 이때 상속세는 세대생략 할증률이 30%가 더 붙는데, 상속세는 납부 능력이 없는 손자를 대신해 최씨 아들이 대신 납부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최씨 아들이 사망하게 되면, 보험 계약을 상속받은 손자는 약정된 사망보험금을 수령하게 된다. 이때 손자가 납부할 세금은 없다. 할아버지 최씨 사망 시점 계약자와 수익자를 모두 손자 명의로 바꾸고, 보험계약에 대한 상속세는 최씨 아들이 대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최씨 아들 사망보험금은 손자 입장에서는 상속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 만큼, 상속세도 부과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