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에지(특색) 있는 운용사에 돈을 맡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의 투자 철학과 과거 수익률, 펀드매니저의 능력 등을 면밀히 평가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현지 운용사에 자금을 집행한다. 제약·바이오 업종에 강점을 가진 쿼드자산운용은 지난해 노르웨이 연기금 자금을 수천억원 유치하면서 주목 받았다. 세계 최대 주식 큰손은 쿼드자산운용의 어떤 점에 끌린 것일까.

쿼드자산운용은 한국 제약·바이오 업종에서 유망한 주식을 발굴해 장기 보유하는 전략을 취한다. 간판펀드인 ‘쿼드코리아 헬스케어 1호 펀드’는 지난 2019년 출시된 장수 펀드다. 금리 인상으로 불안정한 시장 환경이 오래 지속됐지만, 9월 말 기준으로 118%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25% 상승했다.

펀드 운용을 맡고 있는 한규민 펀드매니저는 “헬스케어 시장을 부진하게 만들었던 고금리 환경이 지난 달 미국의 빅컷(금리 0.5%포인트 인하)이 시작되면서 일단락됐다”면서 “금리가 방향을 바꾸는 전환기엔 제약·바이오 같은 경기 방어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약학 석사 과정을 마친 한 매니저는 헬스케어 전문 9년차 운용역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최근 1년 수익률 35%의 비결은?

“한국 헬스케어 상장기업 중 20~25개 종목에 투자한다. 알테오젠, 유한양행, 리가켐바이오 등에 일찌감치 투자했는데, 올해 주가가 급등하면서 수익이 났다. 지금은 기존 종목들의 비중을 늘리기보다는 다른 유망 종목을 찾고 있다.”

–헬스케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거시 경제가 불확실해지면서 금리 방향성이 바뀌는 지금이 헬스케어 투자의 최적 타이밍이다. 헬스케어는 대표적인 경기 방어 업종인데, 경기가 나빠져도 의료·건강 서비스 수요는 꾸준하다. 지난 30년간 미국 기업들(S&P500)의 이익 전망치가 하향될 때마다 헬스케어 기업들의 주가는 오히려 좋아졌다. 금리가 내리면 바이오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용이해져 재무적 부담이 줄어든다.”

–한국 헬스케어는 몇 년간 부진했는데...

“국내 헬스케어 업종은 지난 2020년 말부터 영업이익 증가율이 계속 하락했고, 덩달아 투자 매력도도 낮아졌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헬스케어 업종의 영업이익 증가율 예상치는 53%로, 업종별 지도에서 보면 상위권이다. 경제 발전과 고령화에 따라 헬스케어 업종 비중은 일정하게 상승하는데, 해외 주요국(10~15%)에 비해 한국은 아직 8%로 낮아 상승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헬스케어 산업 전망은?

“신약 개발 기업에 대한 재평가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한국 제약사들은 오랜 기간 신약 개발과 거리가 멀었다. 특허가 끝난 복제약을 만들고 병원에서 영업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상위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한국 투자자들은 신약 개발 성공 후 이익 증가 국면을 경험한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이미 해외 기업은 알고 있다. 한국 헬스케어 업종에 대한 밸류에이션(투자 척도)이 높아질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들이 나왔나.

“SK바이오팜은 자체 개발한 뇌전증 신약을 미국에서 직접 판매하고 있다. 작년까지 장기간 영업손실이었지만, 올해 1~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마진이 매우 높은 신약을 분기 단위로 1000억 넘게 팔고 있는데, 올해 매출은 5000억원이 예상된다. 아마 국내 제약·바이오 역사상 미국에서 신약을 팔아 유의미한 이익을 내는 첫 회사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문턱을 넘은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도 미국에 진출하는 첫 국산 항암제가 될 전망이다.”

–한국이 바이오 강국이 될 가능성은?

“한국은 인구 감소국이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는 나라에 비하면 불리하다. 그 대신 양질의 고급 인재가 풍부하고 의료 시스템이 뛰어나서 임상시험(臨床試驗)을 하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서울이 전세계에서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 중 하나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제약·바이오는 종목 발굴이 참 어렵다.

“임상 성공 가능성 뿐 아니라 약물의 확장성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적응증이나 초기 라인으로의 확장이 가능한지, 병용 투여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신약 개발 회사라면 후보 물질이 어디에서 왔는지, 내부에서 만들었다면 개발 인력들이 계속 회사에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해외에서 사 왔다면 실패한 물질은 아닌지, 혹은 어느 정도 단계까지 연구되던 것인지 배경을 알아야 한다. 회사가 임상시험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하고 있는지도 체크해야 한다. 약의 성공이 아니라, 임상시험 공시에만 관심을 두는 상장사는 걸러야 한다.”

–앞으로 유망 분야를 꼽아 본다면?

“헬스케어도 연구 테마에 유행이 있고, 굉장히 빠르게 변한다. 최근에는 항암 효과가 높은 이중항체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스페인에서 개최된 유럽 종양 학회(ESMO)에 참석했는데, 암 치료 면역관문억제제인 PD-(L)1+VEGF 파이프라인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누가 그러는데’ 하는 인터넷 루머는 믿지 말고, 해외 학회에서 발표된 공식 자료들을 읽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