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천일관 홍어삼합 /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저희 집은 식당을 합니다. 저의 외증조모인 박성순 할머니는 1924년 해남 장터에서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그 식당은 저의 외할머니,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가 물려 받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산낙지, 홍어, 떡갈비 등이 대표 음식입니다.”

유한(37) 해남천일관 대표가 미 컬럼비아대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할 당시 썼던 자기소개서입니다. 그의 졸업 후 첫 직장은 다빈치 수술 로봇으로 유명한 의료기기회사 인튜이티브였지만, 어릴 적부터 그는 ‘언젠가 나도 준비가 되면 식당을 물려받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인튜이트브 입사 3년차때 최우수사원상 수상할 정도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는 피가 끌리듯 어머니의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최근 서울 잠실에 자신의 식당을 열며 ‘4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올해는 해남천일관의 모태가 된, 해남에 아직 있는 천일식당이 문을 연 지 100년이 된 해이기도 합니다.

한 식당이 4대를 이어 100년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외식업의 역사가 짧은 국내는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한정식은 인건비가 많이 들고, 수익성이 낮기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은 4대를 이어 100년의 역사를 가질 수 있게 됐을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스물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1> 집안의 맛을 지켜라

유한 해남천일관 대표 /이혜운 기자

첫 번째 비결은 집안의 맛을 지키고, 후대에 전수하는 것입니다. 자손도 그 맛에 대해 애정을 느끼고,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 대표에게 ‘전라도 한식’은 맛의 정의였습니다. 그 맛에 대해 자부심이 커진 건 미국 유학시절입니다.

“가끔 어머니가 미국에 와 한식을 만들면, 외국인 친구들은 모두 저희 집으로 놀러왔어요. 당시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올드보이’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노래 ‘강남스타일’이 뜨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지요. 친구들은 전라도 음식 특유의 냄새까지 매력적이라며 그릇을 싹싹 비웠어요.”

이는 그가 한식당을 물려받은 후 내려오는 맛과 조리법을 조금도 바꾸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해부터는 집안의 고집스러운 요리 과정을 기록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가끔 외국인 손님을 모시고 오는 분들이 홍어 대신 다른 메뉴로 바꿔 달라고 하세요. 그럼 저희는 그렇게 해 드려요. 그런데 오히려 외국인 손님이 ‘먹어보고 싶다’며 홍어 요리를 요청하세요. 그리고는 만족해하시죠. 한 독일인 손님은 ‘뷰티풀’이라며 감탄하기도 했어요. 발효는 한식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생선을 삭히는 건 유럽에서도 흔한 조리법이고요. 우리가 지레짐작으로 ‘외국인은 홍어를 먹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편견을 없애고 싶어요.”

<2>식당 일에 대한 자부심

해남천일관 100년 기념 약과 /이혜운 기자

두 번째 비결은 요식업, 식당 일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그는 문화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보아스를 배출한 미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하며 요리가 인류학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배웠다고 했습니다.

“학문적으로 문화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에요. 타 문화와 구분할 때 가장 큰 것은 음식이고요.”

그는 뉴욕의 많은 식당들을 다니며 ‘가업’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마릴린 먼로가 단골이었던 ‘P.J. 클락스’, 1887년에 설립된 피터 루거 스테이크 등을 방문하며 저희 식당을 많이 생각했어요. 그들이 오랜 역사를 뿌듯해 하며, 후식 초콜릿 등에 ‘125년’ 등을 새겨요. 그걸보며 저희도 100년을 기념할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올해 100년 약과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드리고 있지요.”

그는 어릴 때부터 식당을 물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퇴사하고 식당에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던 건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식당 일은 너무 고되다. 너 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지지해준 건 변호사인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랬어요. ‘우리 집안에서 읽어야 할 책은 내가 다 읽은 것 같으니,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해주는 것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란다.’”

<3>현대적인 요소의 적절한 반영

육전과 샤도네이 /해남천일관

무조건 지키기만 한다고 식당이 오래가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그대로의 방식으로만 운영하면 도태되기 쉽습니다.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에 필수적입니다. 메뉴나 서비스에서 작은 변화를 도입해 시대에 맞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유 대표가 잠실점을 개점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장윤진 소믈리에를 고용한 것입니다. 맥주와 소주를 곁들여 먹던 식문화를 확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곳에서 ‘주류 페어링’을 주문하면 샴페인부터 고량주까지 다양한 요리에 맞는 술이 나옵니다. 홍어 삼합에는 위스키 발베니 21년 포트우드, 숯불 떡갈비는 이탈리아 와인 콜리나 세라그릴리 바르바레스코, 한우 육전은 미 소노마 카운티산 샤도네이, 실치 무침은 사케 쿠보타 센쥬 등입니다.

실치 무침과 사케 쿠보타 센쥬 /해남천일관

“발베니 포트우드 21년은 다른 위스키보다 달콤함과 고소함, 스파이시함이 강해요. 홍어 특유의 향을 적절하게 잡아주며 맛이 조화롭죠. 와인 콜리나 세라그릴리 바르바레스코는 버섯 같은 흙냄새가 특징이에요. 저희 식당의 숯불에 구워진 떡갈비는 야채 고명 없이 그대로 나가는데, 여기에 와인 한 모금을 마시면 꼭 채소를 곁들여 먹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4대째 한식당을 물려 받은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요? 그 대답에 사뭇 놀랐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기후변화에요. 재료 수급이 어려워지는 음식들이 있거든요. 올해만 하더라도 수온이 너무 높아 멸치를 준비하는데 애를 먹었어요. 폭염 때문에 김치 만들 배추 상태가 어떨지도 고민이고요. 다른 건 제가 고생하면 해결할 수 있는데, 식재료가 사라지는 건 어떻게 해결할 수 없잖아요. 저는 이 음식 그대로 후대에 남기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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