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리움미술관에서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보고 왔어요. 그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이란! 저희 크리스탈 샴페인을 보는 듯했죠.”
15년 만에 방한한 프레데릭 루조 루이 로드레 회장은 이 같이 말했습니다. 지난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는 러시아 황제가 사랑한 샴페인으로 유명한 크리스탈을 만드는 루이 로드레의 7대손입니다.
루이 로드레는 1776년 프랑스 상파뉴 지역에서 탄생했습니다. 대표 와인 크리스탈은 재정 러시아 황실 정식 공급 샴페인이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재정 러시아는 몰락했지만, 크리스탈 샴페인은 살아 남았습니다. 오히려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더욱 성장했습니다. 대기업의 트로피가 되고 있는 프랑스 상파뉴 지역에서 드물게 가족 경영을 이어가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루조 회장은 2006년 루이 로드레 회장직에 오른 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회사를 키웠습니다. 현재 프랑스 와이너리 대표 중 재산 순위로는 3위입니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면, 억만장자가 와이너리를 구입하면 된다.”
미국 내 농담 중 하나입니다. 와이너리 사업으로 수익성을 내기 그만큼 어렵다는 것일텐데요. 어떻게 루조 회장은 가족 경영을 유지하면서도 회사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일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스물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1>가업을 물려 받으려면, 타 회사에서 증명하라
가업 승계의 조건이 가문의 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루이 로드레 가문에는 ‘가업을 이어 받으려면 적어도 다른 회사에서 5년은 일하며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첫 직장은요?
“저는 파리 9대학인 도핀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대표 부동산 기업에 취직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가업을 이어 받으려면 적어도 5년은 다른 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량을 증명해야 하지요. 제가 가진 비즈니스 강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렇게 부동산 기업에서 10년을 일했고, 아버지는 저를 인정한 순간 회사의 열쇠를 제게 넘겼습니다.”
-부동산 회사에서 배운 것은요?
“사업의 가치를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처음 2년은 고전적인 부동산 업무를 했고, 그 후에는 와이너리 거래를 담당했습니다. 저는 와이너리에서 태어났지만, 외부에서 보는 사업 가치는 내부자의 시각과 달랐습니다. 사업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려면 당장의 브랜드 가치 뿐만 아니라 꾸준한 품질 관리, 장기적인 수익 구조 등이 보장돼야 했죠. 이곳에서 배운 10년은 제가 루이 로드레를 물려 받은 후 성공적으로 외연을 넓혀 가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2>외연 확대는 잘 아는 분야로
루조 회장이 와인을 접한 건 생후 6개월 때였습니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그의 혀에는 와인 한 방울이 닿았습니다. 프랑스 상파뉴에 있던 그의 집 1층은 VIP 손님들을 위한 리셉션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을 방문해 샴페인을 맛보고 즐겼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샴페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와인 비즈니스를 처음 접한 건요?
“12살 때 아버지를 도와 포도밭에서 수확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포도를 수확하고, 손질하는 건 너무 신나고 마법 같은 일입니다. 저는 포도를 수확할 때의 촉감을 정말 좋아했어요. 대학을 가기 전까지 대외 언론 홍보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태어나서부터 경험한 와인에 대한 것들을 제대로 전달하기만 하면 됐거든요. 전 언제나 샴페인 중심에 살았으니깐요.”
-회장에 오른 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외연을 확대했습니다.
“와인 비즈니스는 까다로운 사업입니다. 와이너리들이 매물로 나오기 시작했고, 저희는 가치가 높은 와이너리들을 구입했습니다. 좋은 매물들은 쉽게 살 수 없습니다. 많은 정보와 인맥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열쇠를 부동산 회사에서 일할 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업을 확대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와이너리’일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와인 사업에 최적화돼 있으니깐요. 저희 회사는 현재 프랑스 론 지방의 델라스 프레르, 보르도의 샤토 피숑 콩테스와 샤토 드 페즈, 포르투갈의 라모스 핀토, 프로방스의 도메인 오트, 캘리포니아의 로데르 에스테이트와 도멘 앤더슨, 샤르펜버거 셀러, 메리 에드워드, 다이아몬드 크릭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모두 훌륭한 와이너리지요. 제가 다른 회사들을 인수합병했다면, 이렇게 수익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와이너리를 인수 합병을 할 때 기준은요?
“그 와인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함을 가진 곳을 찾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비전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라는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와인 사업은 결국 장인 정신과 우아함, 순수함, 열정을 바탕으로 한 가족 사업입니다. 와이너리를 인수한다는 것은 두 가족의 만남입니다. 저는 각 와이너리들이 각자의 전통을 보존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해 재창조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요. 제가 인수한 샤또 피숑-롱그빌 드 라랑드처럼요.”
<3>와인 사업은 장기전이 필수
-미국에는 ‘백만장자가 되고 싶으면, 억만장자가 와이너리를 사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와이너리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뜻일 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와인 사업에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와인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소량 생산입니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야 상품 가치가 높아집니다. 포도밭을 만들고 숙성시킬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기다림이 필요한 사업이지요. 그렇게 시간과 경험이 쌓여 저처럼 운이 좋으면 7대 째에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이 로드레 회장으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요?
“포도밭을 파괴하는 폭풍이 오는 순간요. 일 년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니깐요.”
-최근 와인 사업이 침체라는 기사들이 나옵니다. 젊은 층은 와인을 잘 마시지 않는다고도 하고요.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최근 와인 소비량이 줄었다기보다, 코로나 시기 급팽창했던 와인 시장이 정상화됐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기와 비교하면 줄었지만, 이전 시기와 비교하면 증가하고 있거든요. 와인은 주류 사업이라기보다 예술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도 어느 정도 교양이 있어야 좋아하고 즐기는 것처럼, 와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만큼 소비하게 돼 있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와인 교육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문화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저는 2010년 루이 로드레 재단을 설립해 현대 미술을 홍보하고 지원하며 대중과의 만남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는 사진과 영화 사업도 지원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바닷가에서 배우들과 함께 낭독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지요.”
-15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 와인시장은 어떤가요?
“와인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와인 소비자들은 예술을 좋아하고, 창의적이고, 호기심이 강합니다. 샴페인은 한식과도 잘 어울려요. 한국에 온 첫날 저녁, 신라호텔 라연에서 한식과 페어링을 했는데 너무 맛있었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샴페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새로운 조각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 이들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고요.”
[루조 회장이 추천하는 와인과 음식]
요리사 :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차도영 신라호텔 라연 셰프
자연송이 소면과 루이 로드레 크리스탈 2012
“버섯을 면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송이버섯의 향은 과하지 않으면서 샴페인과 잘 어울렸고요. 고기 육수의 깊은 맛은 샴페인과 버섯을 포근하게 감싸줬지요.”
한우 갈비찜과 샤또 피숑-롱그빌 드 라랑드 2018
“보르도 와인의 강하고 단단한 맛이 부드러운 갈비찜과 잘 어울렸어요.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와인과 곁들여 먹기 편했다고나 할까요? 오랜 시간이 주는 깊은 맛은 둘의 페어링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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