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동역 근처에 200억원대 4층짜리 빌딩이 매물로 나왔다고 중개인 연락을 받았어요. 월세 6000만원 들어와 수익률 3.2%라는데... 엔터회사가 전층을 사옥처럼 쓰고 있어서 임차인 관리도 쉬울 것 같고, 한국은행이 금리도 계속 내릴 테니 매매가는 오를 것 같은데 지금 매수하면 어떨까요?”(50대 자산가 이모씨)

요즘 큰손들이 이용하는 금융회사 PB센터에는 강남 중소형 빌딩을 매수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달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3.5%→3.25%)한 가운데, 수익률이 3%대로 높아진 빌딩 매물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입지 좋은 강남권 핵심 지역 빌딩은 고금리 시절에도 수익률이 높아봤자 2%대 후반이었다.

허혁재 미래에셋증권 부동산 수석위원은 “지금 수익률 3%대가 나오는 강남권 중소형 빌딩 매물은 10개 중 7개가 세입자가 한 명인 통임대 건물”이라며 “층별로 임대된 건물(2.5~3%)에 비해 수익률은 높지만 따져봐야 할 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부터 미래에셋증권에서 자산가들의 부동산 주치의로 활약 중인 허 수석위원에게 빌딩 투자 요령에 대해 들어봤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

–큰손들이 강남권 빌딩에 눈돌리는 이유는?

“지난 9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통화 기조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 속에 건물 매수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물 투자는 대출을 활용하는데, 금리 인하는 이자 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서울 강남 지역의 경우, 고금리 상황에도 건물주들이 매매가를 조정하지 않아 수익률이 2%대에 머물렀다. 3~4% 확정 수익을 주는 증권사 발행어음보다도 수익률이 낮으니(건물 가격이 비싸니) 거래는 뜸했다. 그런데 최근 3%대 중반 수익률인 중소형 빌딩 매물도 종종 나오면서 투자자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빌딩 거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나.

“팔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수익형 부동산 매수세는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매물이 계속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빌딩 거래 플랫폼인 ‘밸류맵’에 따르면, 올해 1~9월 신규로 등록된 강남구 빌딩 매물 수는 2236개로, 작년의 두 배가 넘는다. 지금 강남권 빌딩 매매는 매수자 위주 시장으로, 최초 호가 대비 20% 가량 가격을 낮춘 매물 중심으로만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3%대 수익률이 나오는 강남 빌딩 특징은?

“고객들이 요즘 많이 문의하는 3%대 강남권 중소형 빌딩은 10개 중 7개가 통임대다. 통임대란, 임차인 한 명이 건물을 통째로 빌려서 쓰는 것을 말한다. 통임대 건물 수익률은 3~3.5% 정도로, 층별로 임대된 건물 수익률(2.5~3%)에 비해 높은 편이다. 공실률이 0%이고 임차인 관리도 편할 것 같기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선 매력적으로 느끼기 쉽다.”

–이면도로 건물에 통임대가 많아진 이유는.

“2~3년 전만 해도 강남권 이면 도로에 들어서는 4~5층 신축 건물은 짓기만 하면 바로 임대가 되는 초호황장이었다. 주로 스타트업들이 사옥으로 쓰겠다며 건물을 통째로 빌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스타트업 업황이 나빠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임대차 기간이 끝나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벤처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작년에 174개의 스타트업이 폐업했고, 올해도 9월까지 147곳이 문을 닫았다. 새 임차인을 구하면 되지만, 임차 수요가 줄어든 데다 주변에 신축 빌딩 공급이 많아져서 임대료를 크게 낮추지 않는 이상 임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통임대 건물을 매수할 때 주의점은?

“대로변에 있는 프라임급 대형 오피스 빌딩은 공실률이 매우 낮다. 하지만 이면 도로에 있는 4~5층 중소형 건물은 분위기가 다르다. 이런 건물들은 지금은 만실(滿室)이라고 해도 고가에 매수하면 낭패보기 쉽다. 공실률 0%라고 해서 매수했는데 세입자가 나가 버리면 바로 공실률 100%인 텅빈 건물로 바뀌기 때문이다. 장기 임대 계약이라고 해도 2년만 지나면 세입자가 언제든지 퇴거할 수 있다거나 주인이 바뀌면 계약 해지 언제든지 가능 등 작은 글씨로 특약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공실 리스크에 대비하는 방법은?

“공실은 입지와 건물 상태가 아무리 좋아도 일시적 과잉 공급이나 부진한 경제 상황 때문에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공실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임대료를 낮출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임대 수익이 감소하고 자산 가치도 크게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처음 건물 매수를 결정할 때부터 어느 정도 수준까지 임대료를 설정하고 세입자를 맞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빌딩 수익률은 높을수록 좋은가.

“매도자가 제시하는 수익률이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 임대료가 시세에 맞는지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들러리 세입자를 구해서 시세에 비해 과도한 임대료를 받아 빌딩 가치를 부풀리는 사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부동산 유튜버나 중개인들이 높은 수익률을 강조하며 매수자를 유혹하지만, 미끼일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해야 한다. 매각 후 임차인이 임대인 변경을 이유로 계약 중도 해지를 요구하며 나가버리고 새 임차인을 찾지 못하면, 고가에 매수한 사람만 피눈물 흘리게 된다.”

–통임대 임차인은 어떻게 골라야 하나.

“통임대 건물은 임차인 한 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연체라도 하게 되면 위험 분산이 되지 않아 수익에 타격을 입기 쉽다. 따라서 통임대는 층별임대보다 업종이나 평판, 재무제표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우량 임차인 여부를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요즘 서울 강남에 늘어나고 있는 비인가 국제학교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퇴거 확률이 낮아서 공실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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