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미국 장기채 금리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국내 증시에 상장된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의 가격 하락 폭도 커지는 모습이다. 채권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반대로 채권 가격이 하락한다는 의미다.
투자자들은 미국 장기채 ETF 투자 비중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금리 인하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인 만큼 장기채 금리도 결국 내려가리라 판단한 투자자들이 저점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이달 들어 23일까지 개인투자자는 국내 상장된 ETF 중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액티브(H)’ ETF를 788억원으로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3위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516억원)이었다. 순매수 상위 30위 안에 들어간 미 장기채 ETF는 6개로, 총 2202억원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각) 연준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에 나서자 시장에서는 미 채권 금리가 본격적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잠시 주춤하던 미 채권 금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등하기 시작했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이달 초 4.124%에서 출발해 전날 4.5%를 돌파했다.
장기채 금리가 오르면서 관련 ETF 가격은 약세를 보였다. 이달 들어 ‘TIGER 미국30년국채스트립액티브(합성 H)’ ETF는 10.5%, KB자산운용의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 H)’ ETF는 8.15%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빠른 경기 회복세를 보여주는 경제지표가 잇달아 나온 게 경기 연착륙, 혹은 ‘노랜딩’(경기 침체 없이 성장) 기대감을 키우면서 장기채 금리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이달 초 발표된 미국의 9월 고용 보고서와 이후 나온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소매판매 지표 모두 시장 예상치를 웃돌며 금리 상승세를 부추겼다.
여기에 내달 5일 치러질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같은 날 진행되는 미 의회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유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점도 금리 오름세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고,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이 돼 감세를 단행하면 재정적자가 심화하고, 국채 발행 물량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이는 (미 국채 금리) 상승 추세선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미 장기채 ETF 매수 규모를 오히려 키우는 모습이다. 금리 인하 기조가 향후 2년 정도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수집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채 금리도 결국에는 기준금리를 따라 내려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연준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전망치를 2025년 말 3.4%, 2026년 말 2.9%로 제시한 바 있다. 만기가 긴 장기채는 금리 인하 시 단기채 대비 큰 자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 장기채 매수를 권하면서도 호흡을 길게 보고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김인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 기대를 시장이 선반영한 만큼 일시적으로 (채권 금리의) 되돌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추세적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단기 가격 조정은 추격 매수의 기회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