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실손보험 가입 환자가 보험금을 타려 서류를 일일이 떼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25일 시작된다. 소비자가 병원 등에 실손보험금을 타고 싶다고 요청하면 보험회사로 서류가 전송돼 병원 현장에서 ‘원스톱’으로 보험금이 청구되는 방식이다. 그간 귀찮아서 보험금을 포기했던 소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래픽=양진경

일단 금융 당국은 25일부터 병상 30개 이상 병원과 보건소 등 7725 곳을 대상으로 1단계를 시작하고, 내년 10월 동네 의원과 약국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1단계부터 비교적 규모가 작은 중소형 병원의 참여가 저조하다. 지난해 10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고 제도 도입을 준비한 지 약 1년이 지났지만, ‘개문발차(開門發車·차문을 열고 출발한다는 뜻)’ 상황이 됐다. 일단 제도부터 시작하고, 병원 등의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준비 기간 동안 병원, 보험사, 시스템 구축 회사 등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 조율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소형 병원, 10곳 중 4곳만 참여할 듯

24일 보험개발원은 이달 8일 기준으로 전체 대상 병원 7725곳 중 5348곳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동참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큰 규모인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그리고 보건소를 제외한 병상 수 30개 이상~100개 미만의 중소형 병원급의 상황을 보면, 참여율이 저조하다. 중소형 병원 3857곳 중 1559곳만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10곳 중 4곳꼴이다.

그래픽=양진경

하지만 이마저도 ‘장밋빛 전망’이다. 실제 병원을 조사한 게 아니라, 병원에 관련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전자의무기록(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업체의 고객 병원이 모두 참여한다는 가정으로 추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업체들은 환자의 진단·처방 등 정보가 담긴 기록을 관리하는 회사다. 중소 규모 병원은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하기 어려워 이 업체들이 시스템을 만들어 병원에 설치해 줘야 한다. 만약 실제 병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이 같은 추정 참여율은 낙관적 전망에 그칠 수 있다.

◇당국은 자발 참여 유도한다는데

그간 준비 단계에서 시간을 끈 이슈는 시스템을 설치할 EMR 업체가 받게 될 1200만원 수준의 개발비와 확산비(설치비), 유지 보수비 등이 너무 적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이 업체들과 비용 합의를 봤으며, 앞으로 병원 등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청구 전산화가 가능한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게 주요 지도 앱에 표기하는 방안도 IT(정보기술) 업계와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달 보건복지부, 보험업계, EMR 업체 등과 시스템 구축·연계 현황을 점검하는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가 너무 뒤늦게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 조율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간 약 1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던 만큼, EMR 업체나 병원의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 등을 진작 마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EMR 업체 관계자는 “적정 비용 등에 대해 사전에 협의가 잘되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고 했다.

이제는 소비자 편익을 위해서 병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일단 큰 틀은 닦아놨으니, 병원들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병원들에게 참여를 강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지금 상황엔 최근의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하는 의정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부족한 상태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병원·보험사·EMR 업체와 협의를 마쳤고 방안을 마련한 상태”라며 “연말에는 참여 병원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시작 후, 병원 참여 독려

일단 참여하기로 한 큰 병원부터 소비자들은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하게 이용할 수는 있다. 소비자들은 25일부터 보험개발원이 운영하는 ‘실손24′ 앱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원스톱으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이달 이후 발생하는 진료비부터 진료비 계산서·영수증, 진료비 세부 산정 내역서, 처방전까지 전자 전송이 가능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민영 보험사뿐만 아니라 우체국보험 가입자도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레몬헬스케어와 협력해 우리WON뱅킹에서 ‘청구의 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휴 병원의 3년간 진료 내역을 자동으로 조회해 서류 없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했다.

▶함께 보면 좋은 영상

💰부자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경제지침서 유튜브 ‘조선일보 머니’ 보러가기https://www.youtube.com/@chosunmoney?sub_confirmatio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