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 전광판에 고려아연 종가가 나오고 있다. /뉴스1

유명 유튜버의 조언에 따라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 변동성이 큰 고려아연의 ‘숏(하락)’ 선물 투자를 한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봤다.

31일 복수의 고려아연 선물 투자자들에 따르면, 최근 구독자 6만명 이상을 보유한 A씨는 유료회원을 대상으로 고려아연의 숏 선물 투자를 조언했다. 주식 투자 관련 저서를 작성하기도 한 A씨는 월 35만원의 회비를 받고 유료 주식 투자 교육방을 운영하고 있다. 한 회에 180만원 상당의 유료 강의도 진행 중이다. 피해자 B씨는 “A씨가 개인적으로 전화가 와 ‘선물 계좌를 만들고 65만원에 숏을 레버리지(차입) 써서 들어가라”고 했다”며 “숏 선물을 했을 때의 피해 손실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B씨가 추천을 받았던 시기는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가 끝나기 전으로, 공개매수 끝나고 상승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숏 선물을 레버리지를 써서 한다는 뜻은 고려아연 주가가 하락할 것에 미리 부채를 써서 투자한다는 것이다. A씨는 공개매수가 종료된 후엔 기대감 소멸로 주가가 급락할 것이란 분석에 숏 베팅을 추천한 것이다. 그러나 MBK·영풍이 공개매수로 확보한 지분이 과반을 넘지 못하고, 영향력만 강화할 수 있는 5% 대가 되면서 주가는 오히려 폭등했고,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현물 주가가 지난 24일 상한가(일일 가격 제한폭 최상단)를 기록하면서, 선물 11월물 주가도 상한가를 찍었다. 이튿날에도 고려아연 현·선물 가격 모두 140만원 선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선물 레버리지 투자는 변동성이 극심해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며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은 주가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워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물 레버리지 투자는 현물 주식처럼 소위 버티기가 불가능하다. 보유 상품 가격이 증거금 총액의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져 증권사로부터 ‘마진콜(증거금 추가 예탁)’ 통보받은 투자자들도 많다. 많은 투자자들은 반대매매를 당해 손실을 확정하거나, 추가 증거금을 납입하며 버티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투자 손실을 본 사람들은 300명 이상, 손실 금액은 수백억원대가 넘는다고 한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A씨를 대상으로 민·형사상 소송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에 단체 민원도 접수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주식 초보를 대상으로 변동성이 큰 선물 투자를 유도했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고려아연 레버리지 투자 피해에 따른 손실 부담이 커지자, 잇달아 신용거래 증거금률을 100%로 올리며 차단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숏 투자자 대부분이 손실을 봤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레버리지 투자에 나섰던 이들은 반대매매까지 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 현·선물 주가가 급등한 배경 중 하나로 ‘숏 스퀴즈(Short squeez)’가 꼽힌다. 고려아연 선물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에 나섰다가 주가가 예상과 달리 상승하자, 선물 투자를 청산하고 현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추가 주가 상승을 불렀다는 의미다.

A씨는 유튜브에서 자신을 “100억원대 투자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방대 토목학과를 나와 건설회사 소장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했는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고 신용불량자가 됐었다”며 “그 후 택시 기사, 노가다 등을 하며 생활하다 주식 투자로 인생 역전을 했다”고 했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A씨는 최근 유료 강의와 멤버십을 통해 ‘선물 투자’를 추천했다. A씨가 처음 추천한 선물 투자는 ‘한국가스공사’였다. 가스공사가 이유없이 많이 올랐으니 숏(하락)에 베팅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는 A씨의 예상과 달리 오르면서 투자자들은 손실을 봤다.

그 다음 A씨가 추천한 것은 삼성전자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악재가 없는데 내리니 오르는 것에 베팅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삼성전자 주가가 5만원대까지 하락하자 많은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 두 번의 손실로 투자자들이 항의하자 A씨가 “지금까지 손실을 다 만회해주겠다”며 고려아연 숏 선물을 추천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A씨는 “저 때문에 큰 손실이 난 분들께 사과 드립니다. 주식은 100% (정확한 것이) 가 없는데 생각이 짧았던 거 같습니다”라며 “유료 멤버십 프로그램은 종료한다”는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이런 돌발적 사태가 일어날 줄은 전혀 몰랐다. 저 역시 손실금액이 너무 큰 상태”라며 “정말 죄송하다. 당분간은 자숙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특정 수익률을 제시하거나, 고수익을 약속한 경우가 아니면, 리딩방을 운영했다고 해서 불법을 단정할 순 없다. 다만 최근 강화된 자본시장법으로 인해 투자자문업 등록 없이 소셜미디어, 오픈채팅방 등에서 투자자들과 양방향 소통을 했다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유사투자자문업의 경우에도 원금 손실 가능성 안내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