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최근 환자 A씨는 왼쪽 무릎 통증으로 서울 강남구의 한 의료기관를 찾았다. 의사는 A씨에게 다리에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운동 치료를 병행할 것을 추천했다. 비용은 500만원. 병원 관계자는 망설이는 A씨에게 “실손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370만원 정도는 돌려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후 A씨는 도수치료와 필라테스를 병행했고, 보험사에는 도수치료만 받은 것처럼 청구해 보험금을 타갔다.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 진료 등으로 인해 실손보험 손실 규모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국민 4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되지 않는 급여의료비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도수 치료, 비타민 주사 등과 같은 비급여다. 비급여 의료는 보건 당국의 관리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은 환자에게 비급여 치료를 권하며 수익을 낼 수 있고, 환자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 없기 때문에 과다한 의료 이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A씨의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손 있으세요?”라는 말을 병원에서 적지 않게 듣는 이유다. 특히, 도수 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증식 치료 등 비급여 물리치료는 수년간 실손보험 지급 보험금 1위 항목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올해 물리치료 실손보험금 1조6000억원

31일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도수치료·체외충격파치료·증식치료 등 비급여 물리치료로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1조5620억원으로 집계됐다. 총 784만건에 대해 지급된 보험금이다.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나간 실손보험금을 모두 합하면 7조원이 넘는다.

게다가 2021년 1조8468억원, 2022년 1조8692억원, 2023년 2조1270억원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8월까지 이미 1조6000억원에 가까운 실손보험금이 나가면서, 업계에서는 작년 지급 보험금 규모인 2조원이 올해 다시 경신될 것으로 보고있다. 치료 종류별로 살펴보면, 도수 치료에 지급된 실손보험금이 4조480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체외충격파 치료(1조6521억원), 증식 치료(8353억900만원) 순이었다.

◇건강보험, 도수 치료 관련 기준 없어

특히, 비급여 물리치료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도수 치료다. 도수 치료는 약물 치료나 수술 없이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쓰인다. 특히 긴 시간 앉아있어야 하는 현대인들이 많이 겪는 질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행 건강보험에서 도수 치료 관련 기준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도수 치료의 횟수, 치료 기간, 실시 주체 등을 규정하고 있는 산재·자동차보험과는 다르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의 불필요한 처방·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보험 업계의 주장이다.

보험 업계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치료 목적에 부합하지 않거나 보장 대상이 아닌 성형·미용 치료를 도수 치료로 둔갑시키는 등 불법적 행태가 만연하다”고 주장한다. 환자의 실손보험 가입 유형을 파악하고, 도수 치료 플랜을 기획하는 의료기관도 있다고 한다. 자세 교정, 성장 촉진 등 목적으로 수십 회의 도수 치료를 권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실손보험 상품 구조 개편하고, 비급여 관리해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손의료보험 상품 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먼저, 실손보험 상품 구조와 관련해서는 주요 문제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이용 횟수와 보장 한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자기부담률을 올리는 것도 거론된다.

비급여 진료비 관련 가격 관리,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체계상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를 통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다. 보건 당국이 진료 대상, 진료량, 진료 수가 등을 관리하는 급여 의료와는 다르다.

보험 관계자는 “비급여의 경우, 가격 규제가 전무하기 때문에 의료 기관마다 가격 편차가 크고, 과도하게 가격을 설정하기도 한다”며 “이는 결국 국민 의료비 부담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비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