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공모주 수퍼시즌이라길래 치킨 한 마리 사 먹으려고 참여했는데 오히려 돈만 뜯겼어요.”(40대 회사원 김모씨)

“상장일에 얼마나 오를까 하며 기다리던 설렘이 이젠 얼마나 빠질까, 왜 풀청약 했을까 공포와 후회로 바뀌었어요.”(50대 주부 이모씨)

온 국민 용돈벌이 수단으로 인기를 끌던 공모주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투자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만 해도 143%에 달했던 공모주 투자 수익률은 10월 8.6%로 추락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급기야 상장하자마자 하한가 목전까지 추락하는 새내기주도 등장했다. 지난 1일 증시에 입성한 초등학교 방과후 교구업체 ‘에이럭스’는 공모가(1만6000원) 대비 -38.3% 하락한 9880원에 마감했다. 한국 공모주 역사상 상장 첫 날 최대 낙폭 기록이다.

이날 에이럭스는 시초가부터 공모가 대비 22% 내린 채 출발했고, 공모가를 단 한 번도 회복하지 못한 채 장을 마쳤다.

공모주 전문가인 A운용사 대표는 “본업과 연관성이 낮은 유명 기업들을 비교 대상에 넣어 공모가가 부풀려지고, 기업의 성장성을 믿고 장기 보유하겠다는 확약 비율도 낮다 보니 상장일에 ‘팔자’ 매물이 쏟아진다“면서 “거품 붕괴 조짐이 나타날 땐 공모주 청약은 물론, 신규 상장주 매매도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모주는 한우 외식을 기대할 만큼 제법 수익이 많이 났지만 이젠 손실을 걱정해야 할 시기로 접어 들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가격제한폭 확대로 치킨투자단 등장

공모주 투자는 지난해 6월 상장 첫날 가격제한폭이 공모가의 200%에서 400%로 확대되면서 ‘국민 재테크’로 떠올랐다. 작년 말 상장 당일 400% 상승을 기록한 ‘따따블(공모가의 4배 상승)’ 종목이 등장하면서 공모주 열풍에 불이 붙었다. 조(兆) 단위 청약 금액이 몰리는 종목들이 속출했다.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균등배분제’ 혜택을 보려고 가족 계좌까지 동원해서 “치킨 한 마리, 3만원만 벌겠다”는 ‘치킨 투자단’이 늘어났다. 개미들이 모든 공모주에 빠짐없이 참여할 수 있게 일정과 정보를 제공하고, 자동 투자까지 서비스하는 IT플랫폼도 출시됐다.

개미들이 공모주 시장에 몰리자, 돈 냄새 잘 맡는 증권사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열심히 노를 저었다. 지난 달 공모주 청약 신청을 받은 기업 수는 17곳(스팩 제외)을 기록하며 월별 기준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10월 이후 상장 주식 중 최대 하락률은 로봇솔루션업체인 씨메스다. 1주일새 반토막이 났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가을 상장사 83%가 공모가 ‘상초’

하지만 10월을 ‘공모주 수퍼먼스’라고 부르며 고수익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예상치 못한 주가 부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내기 종목들이 모조리 마이너스 행진 중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모가가 회사 가치 대비 부풀려지면서 시장에 왜곡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10월 이후 신규 상장사 12곳 중 10곳의 공모가가 희망공모가 최상단을 초과해 높게 책정됐다. 업계에선 ‘상초(상단 초과)’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작년만 해도 전체의 10~20% 수준이었는데 올해 80%까지 높아졌다.

공모가 대비 46%가 떨어져 10월 상장사 중 하락률 1위인 로봇솔루션업체인 ‘씨메스’ 역시 상초 기업이다. 공모가(3만원)가 회사의 희망공모가 상단을 25% 초과했다. 씨메스 관계자는 “공모가는 수요 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이 써낸 가격에 따라 정해졌는데 참여 기관 80% 이상이 희망 공모가 상단을 초과한 높은 가격을 써냈다”고 했다.

투자자문사 대표 K씨는 “공모주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새로 뛰어든 기관들이 현재 800곳이 넘는다”면서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서 물량을 더 확보하려면 수요예측 과정에서 높은 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 10월은 공모주 청약이 많아 큰 장(場)이 설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기관만 배 불리는 뻥튀기 공모가

애당초 수요예측 절차에 나오는 희망 공모가가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은 동종업계 상장 기업들의 주가와 비교해서 공모가 희망 범위를 정한다. 그런데 상장사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미래 추정 실적을 과도하게 높이거나 고평가된 해외 유수 기업들의 주가와 비교하고 있다.

가령 적자 기업인 ‘씨메스’는 시가총액 150조원인 공장 자동화 설비업체인 일본 키엔스와 세계 1위 산업용 로봇 업체인 일본 화낙(시총 36조원)을 비교 기업으로 골라 회사 가치를 산정했다. 11월 상장 예정인 디지털 테마파크 업체 ‘닷밀’은 비교기업에 헬로키티로 유명한 일본 산리오(시총 9조3000억원)를 넣었다.

주식 20년차인 투자자 P씨는 “한국 공모주 생태계는 로또복권처럼 다수의 자금을 모아 소수에게 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변질됐다”면서 “엔젤 투자자들은 비싸게 팔 기회라며 빠르게 탈출하고, 증권사들은 공모가에 비례해 수수료 받으니 높이려고만 하고, 국가는 거래 수수료로 이득을 보는데 어설프게 매수한 개미들만 피눈물을 흘린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따따블'(공모가의 400%로 상승) 달성에 성공한 1호 기업의 현재 주가 현황./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실적 부풀려 상장하면 美선 소송감

단타 목적에서 공모주 물량을 받은 기관들은 장기 보유 확약을 전혀 하지 않고, 상장 당일 가격이 높을 때 수익을 내고 유유히 빠져 나온다. 하지만 이런 먹튀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덜컥 매수한 개인들은 손실을 떠안고 장기 보유하게 된다.

상장 첫 날 역대 최대 낙폭(-38.3%)을 기록한 에이럭스의 경우 공모주 투자자는 물론이고, 이날 매수에 가담한 개미군단(순매수 227억원)까지 모조리 손실인 상태다. 하지만 상장 주관사는 성과 수수료와 청약 증거금 이자 등까지 더해서 23억원(공모주 전문가 아이언씨 추정)의 수익을 챙겼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6월 미국 증시에 상장한 네이버웹툰은 주가가 4개월 만에 공모가 대비 반토막 나면서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자 집단소송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미국은 상장시 가이던스(예상실적)를 의도적으로 부풀려 신고·제출하거나 부정적 사실을 고의로 알리지 않으면 전문로펌들이 주주들과 연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들어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