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줄 목적으로 올해 8월까지 5대 은행에서 받은 대출 규모가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보증금이 최고치를 찍었던 2021년 하반기 이후 체결된 전세 계약의 2년 만기가 차례대로 올해 상반기까지 돌아온 영향이다.

세입자를 제때 구하지 못하거나 전세 보증금이 떨어져 반환이 어려운 임대인이 많다는 의미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 규제 여파로 매매는 물론 전세 수요도 위축되면서, 올해 하반기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집주인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방과 서울·수도권 외곽의 경우 ‘역전세(전세 시세가 기존 전세 보증금보다 낮은 현상)’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6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올해 8월 말까지 취급한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신규 취급액은 4조1000억원(신규 취급 건수는 1만7000건)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연간 신규 취급액은 2022년 4조8000억원(2만3700건)에서 지난해 6조원(2만5900건)으로 늘었다. 올해 집계된 신규 취급액이 8월 말까지 나간 대출임을 고려하면 연간 취급액은 지난해와 맞먹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수요는 당분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1주택 이상 보유자의 대출 창구가 아예 막힌 데다 전세자금 대출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신규 전세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서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태로 보증금을 내줘야 할 집주인 상당수는 은행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은행은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주문에 1주택자 대출은 대부분 막은 상태나,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에는 한도를 두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전세 사기 사태를 촉발한 역전세난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역전세 현상은 빌라(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올해 7~9월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한 빌라 전세 거래의 45.7%가 기존 전세 보증금 대비 전세 시세가 하락한 역전세 주택이었다. 상대적으로 집값 낙폭이 적은 수도권에서보다 비수도권에서 역전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금융 당국은 오는 12월 종료되는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 규제 완화 조치(역전세 반환 대출 규제 완화)를 연장할지 여부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역전세 반환 대출 규제 완화는 세입자 보호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한시적으로 도입됐으며, 이후 5개월 연장됐다. 전세가가 하락해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부족하거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지원 대상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대신 총부채상환비율(DTI) 60%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연간 임대소득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도 1.5배에서 1배로 완화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 보증금은 상승 추세지만 연말 전세시장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가계부채 억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금융 당국의 입장에선 규제 완화를 추가로 연장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규모가 커질수록 가계부채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집주인(임대인)이 임대차 계약 종료 시 임차인인 세입자에게 전세자금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지 평가한 뒤 대출을 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세 사기 위험을 줄여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과도한 전세대출 규모를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