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대기업과 공생하며 덩치를 키워 온 사모펀드(PEF) 업계가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행동주의 전략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여러 이유로 저평가받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국내외 사모펀드나 자산운용사가 소액주주의 지지를 등에 업고 행동주의에 나서기 쉬운 상황이다. 이들의 잇따른 경영권 공격으로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에 표 대결을 펼치는 기업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한국콜마그룹의 지주사인 콜마홀딩스는 전일대비 12.93% 상승한 812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장 초반부터 강세를 보인 콜마홀딩스는 오후에는 8440원(17.39%)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는 일본 증시에서 주주행동주의를 적극적으로 펼쳤던 미국 행동주의 펀드 달튼인베스트먼트의 지분 취득 소식이 전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달튼은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 연초부터 콜마홀딩스 지분을 매집해 왔다. 이에 달튼이 콜마홀딩스에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가가 크게 뛴 것이다.
이처럼 주주행동주의가 확산하면서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법무법인 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국내 기업은 5년 연속 증가해 77곳에 달했다. 2019년 8곳에서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최근 1년간 공격받은 기업 수가 57% 증가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단순 지분투자를 넘어 주주로서 투자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배당 확대 등 주주가치를 높이고 경영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주로 단기 주가 부양을 노린다. 최근엔 KCGI, 얼라인파트너스 등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맹활약을 펼쳤다.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MBK파트너스를 시작으로 PEF 업계 또한 이에 동참할지 여부다. 그간 PEF는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끌어올린 뒤 비싸게 되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PEF가 투자 파트너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업과 동반자 관계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MBK가 지난해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 그룹의 경영권을 공격한 데 이어 올해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런 기조가 확산할지가 관심을 받고 있다. 한 PE 대표는 “기본적으로는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딜에 집중할 생각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행동주의 전략을 펼칠 계획”이라며 “경영권 인수 딜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느 회사든 새로운 영역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과 현대차를 공격했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은 사실 바이아웃에 주력하는 곳이었다. 장외 정보기술(IT) 회사를 인수한 뒤 기업공개해 차익을 실현하는 데 중점을 뒀었다. 하지만 2019년 약 1%의 지분으로 세계 최대 통신기업 AT&T에 자산매각을 요구하고 인수합병에도 제동을 거는 등 최근 들어 행동주의 전략을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 사정상 확산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주로 투자 활동을 하는 토종 PEF의 경우 대기업, LP와의 관계 때문에 같은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