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미국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미 증시에 1000억달러 이상 투자한 서학 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비롯해 트럼프 당선으로 주가가 오르는 ‘트럼프 랠리(강세)’의 대표 종목들을 서학 개미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치권이 트럼프 당선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과 대조적이다.

11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 개미들이 많이 보유한 상위 5종목은 테슬라,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TQQQ다. TQQQ는 수익률이 나스닥100 지수 하루 등락률의 3배로 설계된 ETF(상장지수펀드)다. 미 대선 전날인 지난 4일 기준으로 다섯 종목 보유액은 372억달러로, 서학 개미의 전체 미국 투자액(909억달러)의 40%를 넘었다. 4일 이후 8일까지 4일간 상승률을 감안하면 서학 개미들이 5종목을 팔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을 경우 약 62억4000만달러(약 8조7000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가상 화폐 대통령' 되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7월 27일 미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비트코인을 금처럼 미 중앙은행의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AP 연합뉴스
그래픽=양인성

◇테슬라, 트럼프 당선 후 32%대 상승

서학 개미에게 최고 효자 종목은 테슬라다. 테슬라는 지난 8일 321.22달러로 마감해 4일과 비교하면 32%가량 올랐다. 대선 직전인 4일 서학 개미의 테슬라 보유액(137억달러)에 상승률을 곱하면 4일 만에 약 44억달러(약 6조원)를 번 셈이다. 이 기간에 서학 개미들이 상위 5종목에서 올린 수익의 70%를 테슬라 한 종목에서 번 것이다.

서학 개미 보유 2위인 엔비디아는 지난 4~8일 8.5% 올랐다. 지난 4일 서학 개미의 엔비디아 보유액(126억달러)을 감안하면 4거래일 동안 평가 금액이 11억달러 늘어난 것이다. 3·4위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같은 기간 각각 2.2%, 3.5% 올랐다. 이 종목들을 보유한 서학 개미들도 각각 1억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서학 개미 보유 5위인 TQQQ 가격은 이 기간에 17.8% 상승했고, 서학 개미 보유액은 약 5억4000만달러 증가했다.

테슬라의 급등은 트럼프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일론 머스크 창업자의 효과다. 존 머피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는 “머스크와 트럼프 간의 관계가 잠재적으로는 회사의 성장과 수익성 증가 기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면서 “특히 자율 주행 기술에 대해 트럼프 2기 정부가 연방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미 증시로 개인 이탈 가속화 우려

서학 개미들이 국내 주식에 투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테슬라가 30% 넘게 오를 동안, 국내 자동차 대장주 현대차는 1.86% 하락했다. 현대차 실적이 테슬라에 밀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분기 테슬라 매출은 251억8200만달러(약 35조원), 순이익은 21억6700만달러(약 3조284억원)였다. 반면 현대차 매출은 43조원, 순이익은 3조2000억원으로, 테슬라의 거의 1.2배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테슬라가 1조100억달러(약 1400조원), 현대차가 44조원으로 32배 차이 난다. 한 증권사 임원은 “아무리 테슬라 미래 가치가 높다고 해도, 매출과 순이익이 적은데 시총이 32배 차이 나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다른 업종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가 대선 이후 8.51% 상승할 때, SK하이닉스는 0.31% 하락했다. 애플이 2.23% 상승했지만, 삼성전자는 4.51% 하락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강경 기조가 미국 내 AI 산업에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한국 업체들엔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트럼프 정부 2기 확정 이후 국내 증시는 맥을 못 추는데 미국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고 있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