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나흘째 급락세를 지속한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이 ‘트럼프 패닉(공황)’에 휘청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 경제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13일 한국 코스피는 2.64% 떨어지며 2417.08에 마감했다. 나흘째 급락세로, 작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미 대선 이후 코스피 하락률은 6일 0.52%에서 11일 1.15%로 커지더니, 이날은 2%가 넘는 등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특별히 윤곽이 드러난 악재(惡材)가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급락은 트럼프발(發) 패닉셀(공포에 따른 투매)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1971조원으로 지난 8월 5일 주가가 급락했던 ‘블랙먼데이(검은 월요일)’ 이후 처음으로 2000조원을 밑돌았다. 이날 코스닥도 2.94% 하락한 689.65에 마감해 2개월 만에 700선을 내줬다. 작년 1월 6일 이후 최저치다.

한국 주가를 끌어내린 건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한국에 대한 ‘트럼프 패닉’이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확산한 것이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선 외국인 투자자가 7134억원을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전자를 11거래일째 순매도하고 있는데, 이 기간 2조6920억원을 순매도했다.

정부는 증시 급락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4일 열리는 경제관계장관 회의에서 의제로 다뤄질 것이고, 금융 당국에서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수출 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으로 다른 나라보다 높다. 대미 수출의 35%를 자동차가 담당하고, 대중 수출의 50%를 반도체 등 IT 품목이 담당하는 편중된 구조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자국 자동차 산업을 위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견제하고, 대중 강경책으로 중국의 IT 수출을 제한할 경우 한국이 그 피해를 입을 것으로 투자자들이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트럼프 2기 경제정책의 피해를 다른 나라보다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와 환율에 반영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한국 거래소에 따르면, 미 대선 이후(5~12일) 증시가 가장 많이 오른 곳은 튀르키예(7.06%)이며, 그 뒤를 전쟁 중인 러시아(5.47%), 미국 나스닥(4.57%), 아르헨티나(4.18%)가 이었다. 반면 가장 많이 하락한 곳은 한국 코스닥으로 -5.49%, 그다음이 한국 코스피로 -3.66%였다. 한국을 빼고 가장 많이 추락한 곳은 남아공 증시로 -3.02%였다.

그래픽=양진경

◇‘4만 전자’ 앞둔 삼성전자

특히 이날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4.53% 넘게 하락하며 5만600원에 마감했다. 소위 ‘4만전자(삼성전자 주가 4만원대)’ 진입을 코앞에 둔 것이다. 삼성전자가 4만원대를 앞둔 것은 2020년 6월 15일 이후 4년 만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전자도 11거래일째 ‘팔자’ 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날 외국인 순매도는 7348억원으로 코스피 전체 순매도보다 많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 반도체 관세 이슈뿐만 아니라 기술력 관련 의구심까지 커지면서 매도 물량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날은 그간 트럼프 랠리의 수혜주로 꼽히던 종목들까지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따라 각국의 방위비가 늘어나면서 수혜를 볼 것이라고 예상된 방산주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2.78%), LIG넥스원(-4.26%), 한국항공우주(-1.93%), 현대로템(-0.48%)이 하락했다.

그래픽=이철원

◇원화, ‘트럼프 환율’의 직격탄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효과로 달러 가치가 치솟는 가운데, 트럼프 패닉은 원화 가치 추락세를 유독 심하게 만들고 있다. 1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3.1원 오른 1406.6원에 마감(오후 3시 30분 기준)하며 2022년 11월 이후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화가 다른 통화에 비해 낙폭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게 문제다. 미국 대선일인 지난 5일 이후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2.4% 하락(환율은 상승)했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트럼프의 집중 포화를 받았던 대만·멕시코의 대만달러(-1.8%)·페소(-2.3%)보다 하락 폭이 크다. 주요국 통화 중에서는 유로(-2.4%) 정도만 원화 낙폭과 비슷할 뿐, 일본 엔(-1.8%), 영국 파운드(-1.7%), 중국 위안(-1.6%)은 상대적으로 가치 하락 폭이 적다.

그래픽=이철원

최근의 고환율은 ‘트럼프 환율’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기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를 정책으로 현실화하고 반중국·반이민 기조를 유지하면, 무역 분쟁과 이민자 감소로 미국 내 물가가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를 막고 달러 수요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 국무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 대외 강경파가 트럼프 2기 내각 인사에 다수 포진할 가능성도 달러 매수 심리를 부추긴다.

외환 당국의 개입도 쉽지 않아 보인다. 외환시장에서는 전반적인 달러화 강세 흐름 속에서 1400원 선을 지키기 위해 ‘실탄’을 써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10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57억달러로, 지난해 말 4202억달러보다 줄었다.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 선이 깨져 ‘앞자리 숫자’가 3000억대로 바뀌면 환투기 세력의 타깃이 될 수 있어 외환 당국의 운신의 폭도 좁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이달 말 1450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