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내년 상반기까지 강달러(달러 강세) 추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국내 금융지주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계획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가락) 은행이 내준 외화대출의 환차손이 커지고 건전성이 악화해, 배당 여력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금융지주는 올해 남은 두 달간 리스크 관리에 고삐를 조여 환율이 배당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외화대출 잔액은 지난 10월 말 기준 99억1100만달러(약 13조8268억원)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6억8000만달러 늘었다. 통상 외화대출의 주 고객은 기업으로, 그중에서도 대기업 비중이 높다. 은행 외화대출이 증가한 것은 올해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내 수출기업의 외화 자금 수요가 증가한 데다,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미리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지난 6일 1404원까지 오르며 7개월 만에 1400원대까지 올랐다. 지난 12일엔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이 1403.5원을 기록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 1400원을 넘은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미국 금리 인상 단행 때에 이어 4번째다. 금융권에선 내년 상반기까지 강달러가 이어지며 환율이 145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반중국·반이민 정책 등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해 미국의 금리 인하를 지연시킬 가능성이 커 달러 강세가 지속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선 부담이다. 환율이 오르면 외화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지고 그만큼 위험가중자산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위험가중자산이 늘면 배당 여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보통주자본(CET1) 비율’도 낮아진다. CET1 비율은 위험가중자산 대비 보통주자본이 차지하는 값으로, 주요 금융지주는 CET1 비율 13%를 초과하는 자본은 배당 등 주주 환원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할 경우 주요 금융지주의 CET1 비율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달러당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1~3bp(1bp=0.0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이라고 가정하면 CET1 비율은 지난 3분기(1320원) 대비 최대 24bp 떨어지게 된다. 3분기 기준 금융지주사별 CET1 비율은 KB금융 13.85%, 하나금융 13.17%, 신한금융 13.13%, 우리금융 12.00%였다.

은행들은 CET1 비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분간 위험가중자산을 줄이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은행들은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소기업대출, 신용대출 등의 문턱을 높이고 있는 추세다. 또 외화대출 규모를 관리하고 외화 조달 방안을 다양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위험 조정에 나서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연말이면 통상 대출자산을 늘리기보다는 위험가중자산 관리에 집중하는 편인데, 올해는 밸류업 계획 발표 첫해인 만큼 특히 리스크 관리에 더욱 신경 쓰는 분위기다”라며 “또 환율 상승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외화 유동성비율(LCR) 관리 등을 통해 위험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오는 20일 시중은행과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 10곳의 외환·자금 담당 임원을 소집해 외화 유동성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각 은행의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환 영향과 대응 계획 등을 점검하고 외환시장 전망과 외화 유동성 상황, 추후 관리 계획을 논의한다. 금융 당국은 현재 외화 유동성은 양호한 편으로 보고 있으나, 환율이 더 오를 경우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