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직원들과 같이 식사하다가 국내 주식 얘길 했더니, 젊은 직원들이 국내 주식은 원수에게나 권하는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비트코인이나 에쎈피오백(S&P500 ETF)을 사라고 하네요.”(50대 회사원 김모씨)

미래의 투자 주체인 젊은 MZ 세대의 한국 주식시장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디지털 친화적이며 트렌드에 밝은 젊은 세대의 증시 이탈은 한국 자본 시장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MZ세대는 왜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는 것일까. 단순한 투자 트렌드 변화라기 보다는 국내 주식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와 글로벌 증시와의 경쟁력 차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요즘 MZ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저지능 판독 기준’에 ‘한국 증시 투자’가 들어간다고 한다”면서 “가라앉는 국장(한국 증시)을 살려야 하는데,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한유진·이연주

✅日 증시, 30년간 ‘어차피 안돼병’

MZ세대의 한국 증시 이탈이 장기화되면, 일본처럼 ‘어차피 안돼병(どうせダメ病)’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어차피 안돼병’은 일본 주식시장이 1990년대 초 경제 버블이 붕괴된 이후 장기적인 침체와 시장 활력 부족을 겪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투자자 신뢰가 완전히 상실되면서 주식 시장은 좀처럼 오르지 못했고, 해외 핫머니가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리는 그야말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

시장에 새로운 자금을 넣을 주요 주체들이 떠나면, 자본 시장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래 성장성이 막힌 증시에선 신규 상장(IPO)이 어려워지고, 신생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R&D)을 축소하게 된다. 이는 산업 전반의 성장 둔화를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 전체의 성장 활력을 떨어뜨린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50대 이상 57%... 늙어가는 韓 증시

이미 한국 주식 시장에선 세대별 투자 패턴이 뚜렷하게 바뀌면서 자금의 노후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MZ세대가 국내 주식에서 이탈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식 보유자 연령대가 고령화하고 있는 것이다.

21일 NH투자증권이 국내 주식(KOSPI 200) 보유자 207만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의 57%가 50대 이상이며, 30대는 13%, 40대는 26%를 차지했다.

반면 해외 주식 투자에서는 젊은 세대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해외 주식 보유자(70만명) 중 30~40대가 전체의 56%를 차지해 절반 이상이었고, 50대 이상은 20%에 불과했다.

특히 30대와 60대 이상의 투자 성향은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선호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의 비중 차이는 20%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60대 이상은 고배당 위주의 국내 주식을 선호하는 반면, 고수익을 추구하는 30대는 해외 주식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장주인 삼성전자 주주 구조에서도 고령화 현상은 뚜렷하다. NH투자증권 통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주 76만명 중 60대 이상 비율은 35%로 가장 높았다. 반면 30대는 전체의 10%에 그쳐 젊은 세대의 참여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업계 관계자는 “고령자들은 아무래도 국내시장 편중 투자를 뜻하는 홈바이어스(home bias)가 있어 삼성전자 주식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시장 부진이 장기화되면 수요 기반이 약해지면서 결국 투기꾼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MZ세대의 국내 주식시장 이탈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MZ세대 입장에선 개개인이 성장성과 수익성이 더 높은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인 재테크 전략이겠지만 국가 경제 성장의 중요한 축인 자본 시장이 약해지면 경제 성장 동력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해외 증시·코인 등 대체 투자처로 머니무브

정부는 연초에 일본을 따라 증시 부양책인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놨지만, 오히려 코스피는 거꾸로 가면서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한 대형 증권사 본부장은 “주식시장이 살아나려면 뉴머니(신규자금)가 유입되어야 하는데, 현재 밸류업 유입 자금은 뉴머니가 아니고, 이미 증시에 있던 기존 자금의 위치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신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투자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구독자수 344만명을 보유한 유튜버이자 경제 전문가인 전석재씨는 최근 ‘코스피는 버려졌는가’ 방송에서 “미국, 일본, 심지어 중국도 증시 부양책을 발표해서 상승장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애쓴다“면서 “하지만 한국은 주식에 대한 관심이 부동산의 10%도 미치지 않아 코스피가 무너져도 대책이나 대응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값은 조금만 빠져도 온갖 부동산 대책들이 쏟아지는데, 코스피가 폭포수처럼 떨어져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똑똑한 MZ세대가 아파트와 코인, 해외 증시를 선택하는 건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전씨는 이렇게 말했다.

“부진한 주식 시장도 부동산 대책처럼 밀어 붙였으면 뭐라도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쪼개기 상장, 호재 공시 후 유상 증자, 대주주 지분 높은 곳으로 매출 밀어내기 등 한국 증시에는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제도와 문화가 남아 있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전씨는 “국내 주식 투자자는 코로나 전후로 500만명에서 1400만명까지 늘어났는데 반면 주식 시장은 거의 상승하지 않아 수익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면서 “이렇게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한 번 시장을 떠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삼성전자, 美 기업이면 주가 10만원

정치권과 정부는 별 관심이 없는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심층 분석 기사를 연이어 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9일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What’s the Korea Discount and Why is it a problem)’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가치가 낮게 거래되는 현상에 대해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수익성이 높다고 해도) 대만의 TSMC나 일본 도요타에 비해 낮은 가치로 거래된다“면서 ”북한과의 긴장감이 할인 원인이겠지만 더 큰 문제는 기업 지배 구조와 재벌 중심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메모리칩 제조업체이지만 장부 가치에도 못 미치는 낮은 가치로 거래되고 있다. 반면 경쟁사인 대만의 TSMC는 장부 가치의 5배 이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미국의 비교 기업인 마이크론 가치와 비슷하게 평가된다면, 시가총액은 현재의 약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