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1월 22일 17시 57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롯데그룹의 재무 건전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국내 1위 렌터카 업체 롯데렌탈의 매각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롯데그룹은 롯데렌탈 지분 인수에 들인 비용(2조원대)보다 높은 값을 쳐줘야만 팔겠다며 매각에 보수적인 자세를 취해 왔으나, 화학 및 유통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생기자 눈높이를 낮춘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이 롯데렌탈 외에도 롯데캐피탈을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순자산의 0.7배만 쳐줘도 1조원이 넘으며, 롯데그룹의 한·일 핵심 계열사들이 주요 주주여서 매각에 부담이 없어서다. 일각에선 롯데칠성음료를 매각하는 것도 롯데그룹 차원에서 좋은 옵션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 롯데렌탈, 인수 비용 2조 감안하면… 눈높이 괴리가 문제
22일 투자은행(IB) 및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몇 달 전 롯데렌탈의 매각 제안을 받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IB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롯데 측을 찾아가 매각하라고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그룹의 자금 사정이 급해서 뭐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롯데렌탈부터 팔아야 하는 게 맞다”며 “롯데렌탈은 재무적투자자(FI)들이 가장 관심갖고 지켜봐 온 롯데그룹 계열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동안 롯데렌탈의 매각 가능성이 희박했던 이유는 롯데그룹 측과 원매자들의 눈높이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이 롯데렌탈을 품기까지 들인 비용은 약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 중인 지분이 60.63%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기업가치가 약 3조3000억원이 돼야만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셈이다. 이는 현재 롯데렌탈시가총액(1조734억원)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5년 1조200억원에 롯데렌탈(당시 KT금호렌터카) 지분 50%를 인수한 뒤 2020년 지분율을 70.47%까지 끌어올렸고, 2021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후 현재의 지분율(특수관계인 포함 60.67%)을 유지 중이다. 그 외에 국민연금이 5.8%를 보유 중이며 소액주주가 28.5%를 갖고 있다.
SK렌터카의 매각가를 보면 롯데렌탈이 앞으로 얼마의 몸값을 인정받을지 추산할 수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 8월 SK렌터카 지분 100%를 8200억원에 홍콩계 PE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했다. 작년 SK렌터카의 연결 매출액과 중고차 판매 수익은 각각 1조4028억원, 3843억원이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롯데렌탈의 매출액·중고차 판매 수익(2조7500억원, 7501억원)의 절반 정도다. 이를 감안하면 롯데렌탈 지분 100%의 가격이 1조6000억원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현 주가 대비로는 약 50% 높은 몸값이다.
◇ 롯데캐피탈, 3세 신유열이 직접 매각 나설까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이 롯데캐피탈을 매각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주주 구성이 단순해 매각하는 데 있어 큰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롯데캐피탈의 최대주주는 롯데파이낸셜(51%)이다. 일본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핵심 계열사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LSI)가 지분 과반을 보유한 회사다. 롯데파이낸셜과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 모두 ‘오너 3세’ 신유열 상무가 대표직을 맡고 있는 투자 부문 핵심 계열사다.
그 외에 호텔롯데(32.59%), 부산롯데호텔(4.69%), 광윤사(1.92%), 신동빈 회장(0.86%),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0.53%),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0.53%), 롯데장학재단(0.48%)이 롯데캐피탈 지분을 나눠서 보유 중이다. 롯데그룹 측이 총 92.6%를 갖고 있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2019년 롯데카드·롯데손해보험을 팔 때 롯데캐피탈도 매물로 내놓은 바 있다. 지분 전량을 팔 계획이었고 매각 예비입찰에 KB금융지주 등이 참여했지만, 결국 그룹 측에서 매물을 거둬갔다.
롯데캐피탈의 매각이 가시화한다면 기업가치는 얼마나 될까. 보통 캐피탈사의 기업가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으로 책정된다. 롯데캐피탈의 3분기 말 기준 연결 자본총계는 1조5600억원으로, 여기에 0.7배만 적용해도 1조원이 넘는다. IB 업계 관계자는 “롯데캐피탈 정도 되는 회사가 PBR 0.7배에 매물로 나온다면 매각이 흥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칠성음료도 외부에서 ‘탐 낼 만한’ 매물로 거론된다. 롯데칠성은 보유 중인 부동산 가치가 수조원대에 달해 음식료 업종에서 대표적인 자산주로 꼽힌다. 서울 서초동 부지의 가치만 2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롯데제과의 경우 그룹의 근간이기 때문에 매각하기 어렵겠지만, 롯데칠성은 제과와 달리 팔 수 있는 매물이며 사이다·콜라(펩시콜라) 및 주류 사업까지 하고 있어 상품성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다만 유통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이 롯데칠성을 매물로 내놓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필리핀 펩시를 인수해 해외 시장에서 성장성이 높은 데다 재무 건전성이 높고, 그룹 차원에서 롯데칠성의 밸류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오는 2028년까지 매출액 5조5000억원, 자기자본이익률(ROE) 10~15%, 연결 배당성향 30% 이상, 부채비율 100% 이하 유지 등을 목표로 내세운 상태다.
◇ “롯데케미칼, 석유화학 매각하려 했지만…”
업계에 따르면 유동성 위기의 발원지인 롯데케미칼도 수개월 전 전통 석유화학 사업 부문을 매각하기 위해 국내 대기업을 찾아간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대기업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IB 및 재계 관계자들은 이 딜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중국에 밀려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이를 인수하겠다고 나설 곳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현재 롯데케미칼 내에서 전통 석유화학 사업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3분의 2 이상이다.
그 외에도 코리아세븐 내 자동입출금기(ATM) 사업부 등이 잠정 매물로 거론돼 왔으나, 이는 규모가 작아 매각해도 그룹 차원의 위기를 막는데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올해 초 코리아세븐이 ATM사업부의 분리 매각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언급된 기업가치는 400억~500억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