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21일(현지시각) 뉴질랜드 마히아반도에 있는 한 발사장에서 프랑스 사물인터넷(IoT) 기업 키네이스의 위성 5기를 실은 소형 로켓이 발사됐다. 로켓 이름은 일렉트론(Electron). 등유와 액체산소를 추진제로 쓰면서 300㎏ 탑재물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높이 18m, 지름 1.2m 크기의 2단 로켓이다. 일렉트론은 별문제 없이 우주를 향했고, 위성은 1시간 뒤 고도 635㎞ 궤도에 안착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이벤트에 전 세계 이목이 쏠렸다. 이날 발사가 일렉트론의 50번째 임무였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첫 발사 후 7년 1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7년 1개월은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보유해 온 이전 최단 기록(7년 9개월)보다 8개월이나 빠른 속도다. 팰컨9은 2010년 6월 처음 발사됐고, 2018년 3월 50번째 비행을 했다.
일렉트론 개발사는 로켓랩. 우주산업계에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대항마”로 주목받는 미국 우주발사체 기업이다. 업계 관심이 높은 만큼 주식시장에서도 주목하는 종목이다. 소형 로켓으로 스페이스X의 명성에 도전하는 이 당돌한 기업을 세운 이는 뉴질랜드 국적의 엔지니어 피터 벡이다. 벡 최고경영자(CEO)는 2006년 로켓랩을 고향 뉴질랜드에 세웠다가 2013년 미국 정부기관의 미션 수행을 위해 본사를 미 캘리포니아주 롱비치로 옮겼다. 로켓 발사대는 뉴질랜드에 2개, 미국에 1개가 있다.
◇ NASA가 믿고 맡기는 발사 성공률 93%
현재 소형 발사체 시장은 로켓랩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우주발사체 기업 사이에서 로켓랩이 돋보일 수 있던 경쟁력은 무엇일까. 삼성증권은 발사체 재사용 기술과 자체 발사대 보유를 통한 비용 경쟁력, 검증된 발사 이력과 이를 통해 구축된 고객 기반, 통합 설루션 제공 업체로의 성장 전략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로켓랩은 주력 발사체인 일렉트론을 부분적으로 재사용한다. 바다에 떨어진 1단 로켓을 회수해 다시 사용하는 식이다. 그동안은 회수한 1단에서도 일부 부품만 재사용했는데, 올해 8월 발사에선 값비싼 엔진을 재활용해 비용 추가 절감에 성공했다. 발사체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발사대를 보유한 점도 강점이다. 로켓랩이 직접 소유한 뉴질랜드 마히아반도 발사장에선 연간 120회의 발사가 가능하다.
발사 성공률도 높다. 일렉트론의 발사 성공률은 93% 수준이다. 성공률 99%의 팰컨9에는 못 미치지만,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와 누적된 발사 경험 덕에 안정적인 수치를 확보했다. 최원석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성과 우주선을 발사하는 고객에게 발사 실패는 프로젝트가 ‘제로(0)′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며 “신규 발사체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팰컨9과 일렉트론 위주로 발사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미 우주군은 로켓랩과 장기 계약을 맺고 꾸준히 이 회사 발사체를 이용하고 있다. 로켓랩이 뉴질랜드에 있던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 이유도 미 정부와 협업을 위해서다. 2021년 미 우주군의 국가안보우주발사(NSSL) 프로그램, 2022년 NASA의 캡스톤(CAPSTONE) 미션을 비롯해 매년 미 정부 기관과 크고 작은 발사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로켓랩이 일반 투자자에게는 소형 발사체 개발업체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이 회사 매출에서 발사서비스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은 우주시스템이다. 올해 3분기 기준 로켓랩의 발사서비스 매출은 2100만달러, 우주시스템 매출은 8390만달러다. 우주시스템은 우주선과 하위 구성품 제작, 우주선 프로그램 관리, 우주 데이터 앱, 임무 운영 등으로 구성된다.
소진웅 삼성증권 연구원은 “향후 발사서비스 부문의 빠른 성장으로 전체 매출 구성의 변화가 예상되나, 우주시스템 부문 또한 꾸준한 인수합병(M&A)과 기술 개발로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로켓랩의 목표는 위성 제조부터 발사, 애플리케이션까지 직접 하는 통합 설루션 업체로의 진화”라고 했다. 코이핀 집계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로켓랩의 2024회계연도 매출을 전년 대비 77.47% 늘어난 4억3407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2025회계연도 매출은 5억8141달러로 같은 기간 33.9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정부효율부 등장과 뉴트론 성패는 변수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조선비즈 [美드캡 탐구] 시리즈에서 다룰만한 미국 중소형 상장사로 가장 많이 추천한 기업 중 하나가 로켓랩이다. 이는 민간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본격화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마침 미국에선 그 선두기업(스페이스X)을 이끄는 머스크가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요직을 맡았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이 요직이 로켓랩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DOGE)를 신설하고 대규모 정부 지출 삭감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DOGE 신설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여럿 꼽았는데, 로켓랩도 포함됐다. 모더나와 화이자, 레이도스홀딩스, 가트너, 벌컨머티리얼즈, 비아셋, 모토로라설루션, RMP인터내셔널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일렉트론 뒤를 이을 핵심 발사체의 성공 여부도 로켓랩에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일 수 있다. 로켓랩은 소형 발사체 시장에서 쌓은 견조한 입지를 바탕으로 2025년 중형 발사체 ‘뉴트론’을 선보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뉴트론 발사에 성공해야 군집위성 발사서비스 시장에서 스페이스X와 경쟁할 수 있고, 또 로켓랩이 목표로 하는 데이터 서비스 기업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로켓랩이 뉴트론 발사에 실패하거나 발사 스케줄이 지연되면 그 자체가 주가 급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최원석 연구원은 “뉴트론 개발 비용은 2억5000만~3억달러로 다른 발사체 대비 적지만, 매분기 4400만달러가 사용되고 있다”며 “로켓랩이 아직 적자 상태의 민간 기업임을 고려할 때 발사 지연에 따른 비용 증가는 보유 현금 소진과 자금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로켓랩의 현금성 자산 보유액은 5억달러 수준이다.
로켓랩은 올해 2월 이자율 4.25%의 전환사채 3억5500만달러를 발행했다. 만기는 2029년 2월 1일이다. 전환가격은 5.13달러다. 발행 물량 전체가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올해 3분기 말 발행 주식 수 기준으로 14%가 희석된다. 로켓랩은 2027년 2월 이후 주가가 6.7달러 이상(전환가격의 130%)이면 전환사채를 조기 상환할 수 있다.
최 연구원은 “일렉트론 수요 증가와 2025년 뉴트론 발사 성공으로 2026년 흑자로 전환한다면 주식 희석 없이 조기 상환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뉴트론이 발사에 실패해 주가가 전환사채 발행 수준으로 하락한다면 로켓랩의 이자 부담과 상환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