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회사 중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자사주를 사들인다고 공시한 기업 55곳의 공시 이후 주가 상승률이 평균 4.49%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올해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정책 추진을 처음 발표한 1월 17일 이후 코스피가 2.7%쯤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높지만, 자사주 취득 공시 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이 깜짝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올해 활황장인 미국 S&P500이 올 들어 25.15%, 나스닥이 26.6% 오른 것과 비교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특히 일부 이차전지나 유통 기업의 경우 자사주 매입 공시에도 계속된 실적 악화로 오히려 주가가 30~60%가량 빠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 등이 일시적으로 주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지만, 결국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래픽=박상훈

◇자사주 매입 기업들, 주가 상승률 4.5%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22일까지 주가 안정, 주주 가치 제고 등의 목적으로 자사주 취득 계획을 공시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55곳이었다. 증권가에서는 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이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한편 2회 이상 자사주 취득을 공시한 기업들이 있어서 전체 자사주 취득 공시는 78건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의 59건보다 19건 증가한 것이다. 자사주 취득 금액도 9조7522억원으로 전년 동기(3조1685억원)에 비해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정부가 올해 들어 밸류업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면서 기업들이 밸류업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선제적으로 자사주 취득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전년보다 자사주 취득에 자금을 3배 넘게 쏟아부었지만 이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공시일 종가(여러 건 공시한 기업은 최초 자사주 취득 공시일 종가) 대비 현재 주가(22일 종가)를 비교해보니 주가 변동률은 평균 4.49%에 그쳤다.

◇이차전지·유통업 하락, 금융업은 주가 부양

업종별로 보면 자사주 매입의 주가 부양 효과는 명확히 갈렸다. 이차전지 분리막 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2월 2일 자사주 취득 공시 발표 이후 주가가 64.47%나 하락했다. 이 기업은 이어 6월 말에도 자사주 취득을 공시했지만 전기차 수요 침체 우려로 인한 주가 하락은 막을 수 없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올해 3분기(7~9월) 매출액이 5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 감소했고, 영업 손실은 73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내수 부진에 직면한 유통 기업 신세계인터내셔날도 3월 20일 170억원의 자사주 취득 공시를 냈지만, 공시일 대비 현재 주가는 34%나 떨어졌다.

반면 꾸준히 좋은 실적을 보인 금융·증권업은 자사주 매입이 주가 부양에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증권(22.27%), 신한지주(26.16%), 우리금융지주(14.79%) 등은 자사주 취득 공시일 이후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1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679억원, 687억원어치의 자사주 취득 공시를 내기도 했다.

◇실적과 맞물려야 자사주 매입 효과 나와

주가 부양을 위해 여러 차례 자사주 취득 공시를 했지만, 오히려 최초 공시일 대비 주가가 떨어진 기업들도 있었다. 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은 3월 5일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750억원 규모의 보통주 취득을 최초로 공시했고, 이후 지난 21일까지 네 차례 더 자사주 취득 공시를 냈다. 그러나 셀트리온 주가는 오히려 3월 5일(17만5800원) 대비 이달 22일 17만3500원으로 1.31% 하락했다. 문배철강 역시 2월 2일 최초 자사주 취득 공시 이후 올해 한 차례 더 자사주 취득 공시를 발표했지만, 최초 공시일(3140원) 대비 현재 주가는 18.79% 빠졌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결국 주가 부양은 기업의 실적과 경쟁력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취득을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자사주를 활용한 주가 부양은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