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 재무장관인 스콧 베센트는 헤지펀드 매니저와 운용사 최고경영자(CEO)로 40년 넘게 자본 시장에서 일했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방만한 부채 조달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등 재정을 아껴쓰자는 재정적 매파(Fiscal Hawk)로 평가 받고 있죠. 긴축 기조는 금리 상승을 억제하므로, 채권 투자엔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마경환 GB투자자문 대표)

25일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해 4.27%대로 마감했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채권 투자자의 수익률은 높아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스콧 베센트를 재무장관으로 지명한 것이 금리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각종 정책이 재정 적자를 확대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베센트의 재무장관 지명 소식으로 완화된 것이다.

미국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베센트는 예일대 재학 당시 예일 데일리 뉴스 편집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떨어졌다고 한다./예일대동문잡지

✅40년 채권 시장에서 일한 투자 베테랑

미국 재무부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최상위 부처 중 하나로, 재무장관의 영향력은 경제 정책 전반에 광범위하게 미친다.

1984년 예일대(정치학)를 졸업한 스콧 베센트는 투자은행 등을 거쳐 1991년 전설적인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 회사(소로스펀드)에 취직했다.

소로스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로 큰 돈을 벌었는데, 당시 영국 주택시장의 취약성을 심층적으로 다룬 베센트의 분석 보고서가 단서가 됐다고 한다. 2011~15년 소로스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 근무하던 때에는 엔화 약세를 예상하고 일본 증시에 베팅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2015년 독립한 베센트는 소로스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를 투자 받아 키스퀘어를 설립했다. 그는 주로 금리, 환율, 무역, 정치적 이벤트 등 거시경제 지표와 동향을 예측해 자산을 배분하는 매크로 투자로 수익을 사냥했다. 매크로 투자는 글로벌 경제에 대한 이해와 분석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헤지펀드 전략 중에서도 난도 최상에 속한다.

마경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40년 동안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며 실력을 쌓아온 투자 베테랑”이라며 “무모한 재정 적자 확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인물이기에 채권 시장이 안도했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영국 파운드화 가치 폭락,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경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아베노믹스 본딴 ‘3-3-3 policy’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콧 베센트가 일본의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3개의 화살(Three Arrows)’ 경제 정책을 모방한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3-3-3′ 정책이다. 2028년까지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까지 삭감하고, 하루 300만배럴 상당의 원유 증산, 규제 완화로 GDP 성장률 3% 실현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구성돼 있다.

마경환 GB투자자문 대표는 “국민들이 고물가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선택한 만큼, 베센트가 인플레를 잡기 위해 원유 생산을 늘리고 동시에 각종 규제를 풀어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베센트 소식에 10년물 국채 금리 급락

월가는 신임 재무장관에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대규모 감세 정책이 재정지출 확대로 이어져 글로벌 채권 시장에 수급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실제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9월 중순 연 3.6%대 수준에서 지난 15일 4.5%까지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 소식이 나온 이후인 25일,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4.27%까지 하락했다.

재커리 그리피스 크레딧 사이츠는 “매크로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명성이 있는 사람이 재무장관에 지명된 것은 채권 시장에 긍정적”이라고 했다.

스콧 베센트(오른쪽)와 그의 남편인 존 프리먼(검사)씨. 법적 부부인 이들은 대리모를 통해 자녀 2명을 뒀다./X(옛 트위터)

✅‘그림자 연준 의장’ 아이디어 제안

JP모건은 “재무장관은 궁극적으로 행정부 재정 정책에 대해 최종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자리인데, 베센트는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재정 정책에 대한 오판 가능성을 베센트가 억제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JP모건은 “베센트는 파월 연준 의장을 임기 전에 무력화시키는 ‘그림자 연준 의장(Shadow Fed Chair)’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면서 “시장 일각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베센트는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 위상과 안전 자산으로서의 미국 국채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과의 소통에 주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림자 연준 의장’이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임기(2026년 5월)가 끝나기 전에 후임자를 지명해서 파월 의장을 ‘식물 의장’으로 만들겠다는 전례 없는 아이디어다. 그는 “그림자 연준 의장을 임명하면 파월 의장이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