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증권 제공

현대차증권이 시가총액과 맞먹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대규모 신주 발행에 따른 주식 가치 희석을 우려한 투자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증권은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려면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현대차 그룹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것도 주식 발행 한도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현대차증권 주식은 27일 코스피시장에서 7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보다 주가가 13.07%(1150원) 하락했다. 장 중 주가가 7350원까지 밀리면서 최근 1년 중 최저가를 찍었다.

현대차증권이 전날 장 마감 후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한 영향이 컸다. 현대차증권은 신주 3012만482주를 1주당 6640원에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현대차증권이 기존에 발행한 보통주 3171만2562주의 95%에 해당하는 신주가 나오는 만큼 주식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현대차증권 최대 주주인 현대차가 이날 주주환원을 위해 1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면서, 현대차증권 주주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아닌 현대차그룹이 추가 출자에 나서면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현대차증권 종목토론실에는 “현대차가 자사주를 살 돈으로 현대차증권에 출자해 주면 되는 것 아니냐” “결국 현대차 돈으론 안 하고 개미(개인 투자자) 돈으로 시설 투자한다는 것” 등의 글이 올라왔다.

현대차증권은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하려면 현재 1000억원 이상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없고, 정관 개정을 위한 특별결의가 필요해 어렵다고 했다. 현대차증권 관계자는 또 “그룹 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과잉 지배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기존 주주에게도 유상증자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했다.

다만 현대차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현대차증권 유상증자로 배정받는 신주 물량을 100% 소화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현대차증권 지분 25.43%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증권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지분율 15.71%)와 기아(4.54%)는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 참여 여부와 청약 수량을 결정할 예정이다.

현대차증권은 도약을 위해 유상증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대차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2020년 1조원을 넘어섰고 올해 들어 1조3000억원까지 늘었다. 문제는 다른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가 더 가파르게 늘었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대차증권은 올해 9월 말 자기자본 규모 기준 국내 증권사 가운데 23위다. 5년 전 16위에서 뒤로 밀렸다.

현대차증권은 자기자본이 늘면 고객자산 및 담보부 대출, 자산관리계좌(CMA),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파생결합사채(DLB) 등 상품 판매를 확대할 수 있고, 채권자본시장(DCM)과 주식자본시장(ECM) 등 기업금융 부문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증권 관계자는 “자본경쟁력 열위로 대형 증권사와 실적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유상증자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사업을 키워 기업가치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현대차증권은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의 절반 가량을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차세대 원장 시스템’이 핵심이다. 원장 시스템은 증권사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퇴직연금 시스템, 고객 정보 관리 등의 플랫폼을 아우르는 핵심이다. 현대차증권은 차세대 원장시스템을 갖추면 플랫폼들의 속도와 정확성이 향상되고, 고객 정보를 활용할 능력도 커져 리테일과 운용 등 전 사업 부문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재무구조도 개선할 계획이다. 증자도 확보한 자금으로 2019년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RCPS) 775억원을 상환해 차입 규모를 줄이고, 단기 차입금 비중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다.

배형근 현대차증권 사장은 “이번 유상증자를 기반으로 회사가 중장기적으로 밸류업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대차증권이 증권업계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증권의 이번 유상증자는 구주주(기존 주주)에 신주를 배정한 뒤 실권주가 나오면 일반 투자자에게 공모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기존에 보유한 주식 1주당 신주 0.699가 배정된다. 예정 발행가액은 6640원이고, 최종 확정 발행가액은 2025년 2월 7일에 확정된다.

기존 주주는 2025년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유상증자에 청약할 수 있다. 우리사주조합에도 전체 발행 물량의 10%(301만2048)주가 배정됐고, 이 주식은 1년간 보호예수된다. 기존 주주 청약률이 미달해 실권주가 나오면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청약을 받고, 이후에도 남은 물량은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인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