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가 고려아연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추진한 자사주 매입에 대규모 현금이 사용되면서 재무 부담이 크게 증가한 탓이다.
29일 나신평은 고려아연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낮췄다. 신용 등급 전망 ‘부정적’은 향후 신용 등급이 다시 낮아질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신용등급 전망이 낮아진 가장 큰 이유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재무 부담이 가중됐고, 향후 이 부담을 완화하는 데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올해 9월 말 연결 기준 부채비율이 44.6%, 순차입금 의존도 2.3%로 전반적인 재무 안정성 지표가 우수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10월 자사주 취득으로 1조8000억원의 현금이 유출되면서 재무 부담이 늘었다.
김형진 나신평 선임연구원은 “고려아연은 자사주 취득 자금 대부분을 외부 차입을 통해 마련했다”며 “이에 따라 순차입금이 2조원 내외로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차입 부담이 늘어나면서 약 1000억원의 금융비용 부담 또한 증가했다. 김 연구원은 “부채비율이 80% 수준으로 오르면서 회사의 재무안정성 지표는 9월 말과 비교해 크게 악화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앞서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난달 영풍·엠비케이(MBK)파트너스 연합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맞서 자사주 204만30주를 주당 89만원에 사들였다. 회사의 전체 자사주 취득 금액은 1조8156억원에 달한다.
고려아연이 높아진 재무 부담에서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당분간 신사업 관련 투자 등 비경상적인 투자가 지속되고, 자사주 매입으로 차입 부담이 확대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현금흐름은 과거 대비 제약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나신평은 고려아연이 중단기적으로 우수한 영업 수익성을 바탕으로 1조원 내외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향후 나신평은 경영권 분쟁에 따른 지배구조 변경 및 관련 사업, 재무적 영향 등에 대해 점검할 계획이다. 김 연구원은 “글로벌 아연 수급환경 변화, 가격 변동 추이, 주주환원 정책에 따른 자금 소요 발생 규모, 신규 사업 관련 투자 등 재무 안정성 변동 추이 등에 대해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국기업평가도 이달 20일 고려아연의 신용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