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기업가치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운 자사주 공개 매수가 대주주 일가의 현금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자사주 공개 매수란, 회사가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시장에서 자사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지난 달 29일 코스닥 상장사인 사이버 보안 기업 ‘윈스’는 자사주 공개 매수를 통해 최대 주주인 금양통신이 58만458주를 처분해 약 93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금양통신이 처분한 물량은 자사주 공개 매수 전체 물량(136만4416주)의 43%에 달한다. 금양통신은 김을재 윈스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사다. 김을재 회장의 친인척인 김대연씨도 공개 매수에 참여해 5만2000주를 처분하고 7억8000만원을 챙겼다.
주주들은 정부가 야심차게 시작한 밸류업 정책이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악용된 첫 사례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소액 주주 A씨는 “밸류업을 빙자해 높은 주가로 자사주 공개 매수를 시행하고 최대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도왔다”면서 “최대 주주는 58만주나 처분했지만 소각 때문에 기존과 동일한 지분율(37%)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총 발행 주식이 감소하므로 지분율은 줄어들지 않는다.
앞서 지난달 4일 윈스는 공시에서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책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당사도 밸류업 참여 일환으로 공개매수를 통해 발행 주식의 10%를 취득한 뒤 전량 소각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자사주 공개 매수 공시 다음 날인 5일 윈스 주가는 단숨에 15% 급등해 마감했다. 공개 매수 가격이 1만6000원으로, 당시 주가(1만3000원대)보다 20% 넘게 높았기 때문에 대다수 주주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공개 매수 응모 주식 수는 목표 수량(136만4416주)을 63% 초과했다. 회사는 매수 예정 수량 범위 내에서 안분 비례해서 공개 매수를 마쳤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회사가 공개 매수한 자사주 중 43%가 최대 주주 일가의 물량으로 확인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윈스가 사모펀드(KCGI)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17.07%를 인수하면서 200억원 가량 차입금이 있어 자금 압박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회사 자금을 자기 주머니로 옮기려면 배당소득으로 받아야 하지만 배당소득세(최대 49.5%)가 크다 보니 꼼수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것이 아니어서 불성실 공시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라며 “(밸류업을 악용한 사례로 보여지지만) 거래소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윈스’는 문재인 전(前) 대통령을 후원했던 기업인(김을재 윈스 회장)이 대주주인 업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선관위 보안 업무를 맡으면서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