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이 기사는 2024년 12월 9일 16시 24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계엄 사태 이후로 자금 조달 시장이 굉장이 어수선하다. 해외 출자자들로부터 현재 상황과 향후 방향에 대한 질의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 정국에 돌입하면서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해외 기관출자자(LP) 확보 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는 다소 독특한 사정도 있다. 과거 해외 자금 유치에 거부감을 보이던 국책은행들이 올해는 해외 출자자를 확보하는 운용사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하는 등 ‘외자 유치’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였으나, 계엄 사태의 후폭풍이 몰아치며 난항을 겪고 있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올해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블라인드 펀드 출자사업에서 위탁운용사(GP)에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해외 출자자의 자금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펀드 결성 후 1년까지 멀티 클로징(증액)을 허용한 것이다. 당초 산은은 국내 출자자에 한해서만 5~6개월의 펀드 증액을 가능하도록 제한했었다.

올해 들어 정책금융 기관인 산업은행을 포함한 국내 연기금·공제회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습이었다. 국내 투자 펀드에 해외 LP의 출자를 꺼리던 기관투자자들이 해외 LP의 출자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은행과 캐피탈 등 금융기관들이 위험가중자산(RWA)을 맞추기 위해 출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국내 투자자들의 펀딩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는 물론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해외 출자자가 국내 펀드에 출자해 벌어들인 돈을 해외로 유출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며 “다만 최근 들어 국내 금융기관의 출자가 줄어들고 400개가 넘는 사모펀드 운용사 중 일부 대형 하우스가 정책 금융을 독식하면서 해외 LP 풀을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MBK파트너스·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물론 스틱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파트너스 등 다수의 사모펀드 운용사가 플레이스먼트 에이전트(Placement Agent·PA)를 선임해 해외 LP 확보에 나서고 있었다. PA는 국내 스포츠 스타들의 해외 진출을 도와 계약을 따내는 에이전트처럼 국내 운용사들과 해외 큰손들을 연결하고 이 과정에서 일정 수수료를 취득하는 역할을 맡는 기관이다.

그러나 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에 돌입하면서 국내 기관출자자들은 물론 사모펀드 운용사들도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가 원화 약세로 해외 자금을 끌어오기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정책적으로 수혜를 입던 산업군이 정권 교체 후 달라질 수 있어서 향후 투자 분야를 명확히 정할 수 없고, 여기에다 출자 자금의 안정성이 낮아지는 정치적 불확실성은 해외 출자자가 가장 꺼리는 것”이라며 “결국 투자한 돈을 달러로 바꿔 회수해야 하는 해외 출자자 입장에서 원화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수익률이 낮아지는 점도 불안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실제 계엄 사태 이후 국내 PEF 운용사들은 해외 출자자 문의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이후 진행 상황에 대한 일일 보고서를 만들어 해외 LP에 보고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한국 펀드에 자금 집행을 중단한다’ 수준의 반응은 아니지만, 현재 상황과 전망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바라고 있다”며 “자금조달 프로세스가 계엄 전과 계엄 후로 명확하게 나뉜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진행되더라도 새 대통령이 선출된 후까지 혼란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과거에도 정부 차원의 경제 정책 방향이 나올 때까지 해외 LP들의 출자가 중단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 하우스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정권 교체가 진행될 때까지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출자가 중단된 바 있다”며 “당장은 해외 LP들이 현 상황을 파악하는 정도지만, 향후 출자 자체를 보류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해외 LP들의 자금을 받아 국내 기업에 투자한 운용사들도 긴장 상태인 건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포트폴리오 기업에 미칠 영향을 두고 동분서주하는 모양새다. 일부 운용사는 펀드 만기 연장 거부 또는 조기 회수 요청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사태가 장기화하면 내년 한국의 인수합병(M&A)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LP는 물론 국내 기관투자자도 출자 기조를 정하지 못하면서 내년 펀드레이징 자체가 어려워질 것은 기정사실”이라며 “막대한 드라이 파우더를 보유한 대형 하우스 간 세컨더리 딜 외에는 거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