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빅컷(한 번에 0.5%포인트 인하)’으로 ‘금리 인하기’의 문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이에 투자자들은 통상 금리 인하기에 수익률이 좋은 장기채 투자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장기채 ETF(상장지수펀드)의 3개월 수익률은 -8~9%대의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채권 투자에서는 금리가 떨어져야 채권 가격이 올라서 수익률이 높아지는데, 당초 전망과 달리 채권 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계속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물가와 금리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18일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기존 전망보다 더 천천히 내릴 것임을 시사하고 나섰다. 채권 ETF 등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장기채보다 금리 변화에 덜 민감한 단기채 상품으로 투자금을 옮기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 30년 국채 ETF 평균 수익률 –6.6%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8일 기준 국내에 상장된 미국 30년물 국채 ETF 14개(레버리지 및 인버스 ETF 제외)의 최근 3개월 평균 수익률은 -6.63%였다. 운용 규모가 가장 큰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와 ‘TIGER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액티브(H)’가 이 기간 각각 -9.67%, -8.49%의 수익률을 보였다. 다만 환노출 상품인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는 -2.13% 수익률을 기록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 대에서 움직이자,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으로 환헤지형 상품보다 수익률 낙폭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 장기채 ETF가 부진한 이유는 9월 이후에도 미국 채권 금리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연준은 코로나 이후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오다 지난 9월 ‘빅컷’을 단행하며 금리 인하 사이클을 시작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9월 연 3.599%까지 떨어졌고, 투자자들도 향후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에 장기채 상품을 사들였다.
그러나 미 국채 금리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내년 초 트럼프 재집권 시 감세 정책으로 인한 국채 발행 증가와 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상승 등으로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전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달 중순 연 4.3%대까지 올랐다. 연준이 18일 내년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자 연 4.5%도 넘겼다.
◇장기채에서 단기채 환승족 늘어
이처럼 장기 국채 금리가 치솟자 미국 국채 투자자들은 금리 변동에 덜 민감한 단기채 ETF로 자금을 이동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채권은 만기 기간이 길수록 듀레이션(채권 회수 기간)이 커져 시장금리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크다.
1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18일 국내 투자자들은 ‘디렉시온 데일리 미국채 20년물 이상 불3X(TMF)’를 852만달러(약 123억원)가량을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했다. TMF는 미국 장기채 지수를 3배 수익률로 추종하는 상품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아이셰어스 20년물 이상 미국채’(TLT)도 같은 기간 1277만달러(약 185억원)가량을 팔았다.
반면 국내 투자자들은 같은 기간 만기 3개월 미만 채권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3개월 미만 국채’(SGOV)를 4815만달러(약 698억원)가량을 순매수했다. 아이셰어스 단기 국채 ETF(SHV)에도 732만달러(약 106억원)의 국내 투자금이 흘러 들어갔다. 이들의 3개월 수익률은 각각 1.21%, 1.19% 정도다.
당분간 미 채권 ETF 투자자들의 수익률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연금 전문 자산운용사인 티로프라이스는 향후 물가 상승이 국채 금리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 예측하면서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내년 1분기에 연 5%에 도달한다면 연 6%대까지 진입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