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삼성전자의 내년 실적 전망을 대폭 낮춰잡고 있다. 한 달 만에 영업이익을 수조원 넘게 깎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정적인 전망을 너무 한꺼번에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현장에서는 그럴만하다고 반박한다. 해외 경쟁사가 저가 판매 공세를 펼치는 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서면 관세가 올라 반도체가 들어가는 완제품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주가는 이미 선반영 중이다. 올해 8만원까지 올랐던 삼성전자 주가는 5만원대를 전전하고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제시한 증권사 8곳은 모두 한두 달 전 발간한 이전 보고서와 비교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가장 많이 줄인 곳은 NH투자증권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1일까지만 해도 삼성전자가 내년 영업이익 46조33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봤는데, 이달 11일 35조1450억원으로 수정했다. 한 달여 만에 영업이익을 10조원 넘게 낮춘 것이다.
다른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다올투자증권(48조9780억→38조7810억원)은 NH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췄다. 영업이익 수치를 적게 낮춘 곳이라고 하더라도 못해도 최소 2조원은 깎았다. 유안타증권(46조8640억→37조91110억원), BNK투자증권(40조3960억→34조2190억원), IBK투자증권(40조5390억→35조4590억원), 유진투자증권(39조9730억→36조1800억원), 키움증권(42조680억→39조4760억원) 등이 모두 깎았다.
증권사가 삼성전자 앞날을 암울하게 보는 건 기존의 절반 가격으로 물량을 쏟아내는 중국업체 때문이다.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푸젠진화(JHICC)가 저렴한 가격으로 반도체를 팔아 삼성전자는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CXMT와 JHICC가 책정한 D램 공급가는 최저 0.75달러인데, 이는 시장가(2.1달러)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요마저 부진하다.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높지만, 사실상 삼성전자의 텃밭인 PC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범용 제품에 대한 수요는 둔화하고 있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저가형 제품들의 수요가 강세를 보이며 CXMT의 영향이 더욱 부각되는 상황”이라며 “삼성전자의 주가는 기술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과 중국의 추격에 대한 우려가 상당 부분 반영돼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삼성전자 주가가 최고가(8만7800원)를 기록했던 지난 7월의 PBR은 1.69배였다.
영업이익을 10조원 이상 낮춘 다올투자증권은 삼성전자도 시장의 흐름에 맞춰 디램과 낸드의 가격을 깎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조정은 디램과 낸드의 연간 평균판매단가(ASP)를 하향 조정한 데 따른 것”이라며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수요가 부진하고 전반적인 실적 동력이 약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경쟁사와 비교해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비중과 수익성이 떨어져 범용 메모리 가격 하락에 대한 방어력이 약할 것”이라며 “(미국 관세 인상 가능성으로) 완제품 사업도 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에 따른 이익 상승력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가는 바닥을 기고 있다. 지난달 14일 4만9900원을 기록하며 4년 5개월 만에 ‘4만전자’로 주저앉았다. 주가가 떨어지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7개는 삼성전자를 편출하기도 했다. 현재 가격은 이보다는 소폭 올랐다. 전날 삼성전자는 전일대비 3.28% 하락한 5만3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다만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낮추면서도 최근 주가는 과매도 국면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에 대해 가장 낮은 목표주가를 제시한 BNK투자증권도 7만2000원을 불러놓은 상황이다. 이 외 키움증권·한화투자증권 7만3000원, NH투자증권 7만5000원, 다올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 7만7000원, IBK투자증권 8만2000원, 유안타증권 8만5000원 등이다.
미국 트럼프 신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CXMT를 제재할 가능성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호재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급부상하는 화웨이와 SMIC(중국 1위 파운드리업체)의 AI 연합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CXMT가 미국의 엔티티 리스트(제재 대상 기업 목록)에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럴 경우 디램 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빠르게 개선돼 삼성전자의 주가 멀티플(기업가치배수)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고 있어 하방은 경직돼 있다”면서도 “AI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새롭게 확인되는 부분이 없어 본격적인 주가 반등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