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는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최근 이 분야 대장주인 엔비디아 대신 브로드컴을 주목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해외 주식 가운데 브로드컴을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현재 브로드컴이 개발 중인 맞춤형 반도체(eXtreme Processing Unit·XPU)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12월 21~27일 순매수 결제 금액이 가장 많은 해외주식 종목은 브로드컴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국내 투자자들은 1억2377만달러(약 182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국내 투자자의 브로드컴 보관금액은 이달 26일 기준 16억7981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일주일 전 보관금액(19일 13억8846만달러)보다 20.98% 증가한 수치다. 즉 서학개미들은 일주일 동안 브로드컴 주식을 3억달러(약 4294억원)가량 사들인 것이다. 브로드컴 보관금액은 한 달 전과 비교하면 80.55% 늘어났다.
26일 기준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의 보관금액은 125억127만달러다. 보관금액 자체로만 보면 브로드컴보다 훨씬 많다. 다만 불어나는 속도는 더뎠다. 엔비디아 보관금액은 일주일 전(19일 117억6057만달러)과 비교해 6.3% 늘어났다.
최근 들어 브로드컴이 주목받는 건 AI 반도체 시장에서 맞춤형 반도체(ASIC)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체할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회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 3곳과 AI칩을 개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탄 CEO가 언급한 세 기업은 알파벳(구글), 메타, 바이트댄스로 알려졌다.
그동안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생성 AI 서비스를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GPU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메타 등 빅테크 기업은 지금까지 AI 핵심 기반 시설인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때 엔비디아의 GPU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브로드컴의 맞춤형 반도체 XPU가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엔비디아 GPU는 범용성이 뛰어난 대신 가격이 비싸다. 반면 브로드컴에서 만드는 XPU는 각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능만 추려 맞춤형으로 제작한다. 상대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지각 변동에 대한 기대감은 주가로도 나타났다. 브로드컴의 이달 27일 종가는 241.75달러였다. 이는 한 달 전(159.67달러)보다 51.41% 상승한 수치다. 엔비디아 주가는 같은 기간 동안 1.23% 오르는 데 그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맞춤형 반도체에 대한 기대감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AI 관련 커스텀 반도체 수주가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올해 수주한 프로젝트는 내년부터 이익으로 찍힌다”고 했다.
문 연구원은 “기존에 구축한 데이터센터의 네트워킹 환경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데 그 네트워킹 시장에서 1위 업체가 브로드컴”이라며 “이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익 증가가 기대된다”고 했다
브로드컴이 기대감만 주는 게 아니라 실제 성장도 해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브로드컴의 맞춤형 반도체 관련 매출이 반영되는 네트워킹 부문의 올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5.2% 늘어났다. 김승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빅테크와 맞춤형 반도체 설계 관련 계약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칩 설계 초반이지만 관련 부문 수익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초기개발비(NRE) 계약을 기반으로 매출 인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맞춤형 반도체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올랐다고 보기엔 어렵고, 실질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