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내 많은 투자자가 몸만 한국에 뒀을 뿐 마음은 미국으로 보내기 바빴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주요 기술주는 뉴욕 증시를 잠깐 흔들리더라도 금세 다시 불기둥을 세우는 견고한 시장으로 만들었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미국 투자 수익률은 1년 내내 빌빌대는 한국 증시와 더욱 대비를 이뤘다. 서학개미 관심사를 반영하듯 자산운용사들은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앞다퉈 선보였다.
2025년에도 미 증시가 가장 믿음직한 시장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다만 최근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비관론도 슬슬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작년 11월 대선 직후 개선되는 듯했던 미국 소비자 심리가 연말에 급속히 둔화한 점도 뉴욕 증시 버블 붕괴 우려에 힘을 보탠다.
◇ “S&P500 지수가 6630?… 4197까지 추락할 것”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리서치 중 한 곳인 캐나다 BCA 리서치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각) ‘미래에서 온 급보(Dispatches From The Futur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BCA는 보고서 발간 시점을 2026년 1월 2일로 가정하고, 2025년을 돌아보는 독특한 전개 방식을 취했다. BCA는 그간 미 경제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시각을 유지해 온 기관 중 하나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비관 강도를 한층 높였다.
우선 자본시장에 대한 회고부터 보자. BCA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를 무기로 촉발한 무역 전쟁 탓에 2025년 1분기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였고, 2분기는 재정 위기로 또 한 번 증시가 흔들렸다고 했다. 지수 만회는 3분기 이후 이뤄진다. BCA는 2025년 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4452포인트(pt)에 불과했다고 했다. 11월 초에는 4197pt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이는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JP모건 등 주요 IB 전망치인 6500pt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미 월가의 2025년 S&P500 평균 전망치는 6630pt다. 2026년의 BCA는 그러나 “2025년 S&P500 기업의 예상 주당순이익(EPS)은 240달러로, 2024년 수치와 유사했다”며 “인공지능(AI) 주식에 대한 열기가 시들해졌다”고 했다. 다만 BCA는 “무역에 노출된 다른 국가보다는 미국 주식이 나았다”고 덧붙였다.
채권과 관련해서는 2025년 봄 국채 수익률이 급증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약속했던 감세 대부분을 포기했다고 BCA는 전했다. 또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2025년 말 3.25%로 하락했고, 부도율 상승과 함께 신용 스프레드도 급격히 확대했다는 게 미래에서 온 BCA가 들려준 이야기다.
BCA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비관론의 바탕에는 미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 이 보고서에서 BCA는 2025년 5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경기 침체를 공식 인정했다고 밝혔다. 2024년 하반기 채용 공고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수준(구인율 4.6%)에 근접하게 감소했는데, 이는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가 베버리지 곡선의 변곡점으로 언급했던 4.5%에 근접한 수치다. 여기에 2024년 11월 영구 실업자 수는 팬데믹 직전보다 48% 증가했고, 실업기간 중앙값도 10.5주일로 늘면서 경기 침체를 가속했다.
BCA는 고용 불안과 함께 미국 소비자의 초과 저축액이 소멸하면서 최하위층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2025년 들어 신용카드 부채 증가세는 둔화하지만, 대신에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은행들은 주택담보 신용한도 연장에 신중해졌다. 또 모기지 금리는 1990년대와 비슷하지만, 실질 주택 가격은 그때보다 2배 이상 치솟았다고 BCA는 분석했다.
◇ 美 소비심리 급락에 워런 버핏은 주식 계속 처분
BCA처럼 미국 주식시장 붕괴 우려를 나타내는 전문가와 지표는 최근 들어 확연히 늘었다. 일례로 S&P500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현재 22배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30년 평균인 16.8배를 한참 웃도는 수치다. 대표적인 밸류에이션 측정 지표로 꼽히는 PER은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낮을수록 저평가됐다는 뜻인데, S&P500은 반대로 고평가 상태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PER 22배는 미 증시의 지난 40년 역사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가장 비쌌던 때는 2000년대 초반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직전이다. 당시 S&P500 PER은 25배였다. 2020년 팬데믹이 터지고 연준이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던 시기의 PER이 지금과 같은 22배였다.
최근 미국 소비자 신뢰도가 예상을 깨고 급락한 점도 비관론에 힘을 싣는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미 콘퍼런스보드(CB)에 따르면 2024년 12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104.7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112.8) 대비 8.1포인트나 추락한 수치다. 11월 미 대선 직후 개선세를 보였던 소비 심리가 연말에 급속히 둔화했다는 의미다. 12월 기대지수 역시 전월보다 12.6포인트 급락한 81.1로 집계됐다. 기대지수는 소득·비즈니스·고용 등에 대한 단기 전망을 보여준다. 80보다 내려가면 1년 안에 침체가 올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연준이 2025년 금리 인하 횟수 전망을 당초 4회에서 2회로 바꾸며 속도 조절 의사를 내비친 점 역시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더구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2명 중 4명이 올해 바뀌는데, 새로 투표권을 얻는 이들 4명 중 2명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어 연준의 속도 조절 우려는 더 커진 상황이다. 나머지 2명은 각각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와 중립 성향으로 나뉜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해서일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2024년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3250억달러(약 478조4000억원)의 현금을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또 버크셔해서웨이는 최근 계속해서 주식을 순매도하고,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버핏이 22년 만에 채권으로 피벗(pivot·정책 전환)한 것은 미국 주식에 대한 분명한 경고”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증시 호황이 가장 강력한 폭락으로 이어졌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벤자민 보울러 분석가는 “역사상 가장 큰 두 번의 호황은 1929년 주가 폭락과 1987년 블랙 먼데이로 끝났다”며 “S&P500 지수는 이미 수익률이 30%를 초과했고 지수 가치도 과장된 구간에 진입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폭락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