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의류 브랜드 ‘브랜디 멜빌’. 입구부터 세 가지에 깜짝 놀랍니다. 맛집 수준의 긴 줄, 아기옷 같은 작은 사이즈, 그리고 영어로 대화하는 직원들. 한 고객은 “직원들이 한국어를 못한다며 영어로 물어봐 달라고 한다”며 “무슨 감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제로 영어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브랜디 멜빌은 배우 조니 뎁의 딸인 릴리 로즈 멜로디 같은 할리우드 셀럽부터 블랙핑크 제니 같은 팝스타까지 즐겨 입는 옷입니다. 젠지(Z세대)들의 옷장에는 반드시 있는 브랜드, 핀터레스트(이미지 공유 소셜미디어) 감성의 대표 주자 등으로 유명합니다.
가게 곳곳에는 미국의 성조기가 걸려있고, 배경 음악으로는 빌리 조엘의 ‘업타운 걸’이 흘러나오지만, 1980년대 초 이탈리아의 실비오 마산이 그의 아들과 함께 만든 브랜드입니다. 40년이 넘은 이탈리아 브랜드가 어떻게 미국 젠지들의 대표 브랜드가 됐을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서른 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1>어리고 마른 사람만! S만 고집하는 원사이즈 전략
브랜디 멜빌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없습니다. 어리고, 말라야 합니다. “옷은 자신감 아닌가요?”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사이즈가 없습니다. 브랜디 멜빌은 S(스몰) 사이즈, 원사이즈 고수 정책으로 유명합니다. 간혹 맨투맨티 정도는 큰 사이즈가 있지만, 대부분의 상의는 어른 손바닥 두 개로 가려집니다. 무늬도 곰돌이 그림, 자잘한 레이스 등 소녀 감성입니다. 용감하게 입었다가는 “조카옷 빼앗아 입었냐?”는 핀잔 받기 딱 좋습니다.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이즈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브랜디 멜빌은 그러지 않습니다. 팔고 싶은 고객 타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브랜디 멜빌을 입는 것은 “내가 예쁘고 마르고 트렌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입니다.
미국에서는 10대 소녀들이 브랜디 멜빌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다 생긴 거식증이 사회 문제로 거론됐을 정도입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10대 소녀 사이에서는 브랜디 멜빌의 옷을 입을 수 있는지 여부가 인기의 척도로 여겨진다”며 “이 브랜드가 마른 체형의 10대들에게 자신의 체형을 ‘특권’으로 여기게 한다.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이 외모 차별주의를 가속화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아무 손님이나 안 받는 것은 명품 브랜드들이 주로 쓰는 정책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가격과 한정 판매로 손님을 제한합니다. “이 정도 돈이 없으면, 우리 매장 물건을 살 수 없어!”지요. 그러나 브랜디 멜빌은 이를 디자인과 사이즈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사이즈 전략을 고수하다 보니, 옷 태그에는 사이즈가 없습니다. 대신 ‘USD(달러) 23, EUR(유로) 23, KRW(원화) 32000′ 등의 전 세계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가격은 한국에 진출하며 비싸지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젠지들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에 비쌀 수는 없는 것이지요.
<2>한국어 못하는 직원,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논란
한국에서는 직원들이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논란이지만, 미국에서는 금발 백인 여성만 고용한다며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 HBO방송국이 지난해 4월 다큐멘터리로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브랜디 멜빌은 종종 젊고 마른 백인 여성만 모집했고, 이들은 때로는 고객으로 쇼핑을 하기도 했습니다. 직원으로 채용되면 종종 관리자에게 전신 사진을 보내야 했고, 일부 직원들은 가슴과 발 사진도 요청 받았다고 합니다. 인종 차별이 심해 백인 직원들은 매장에서 일하고, 비백인 직원들은 계산대 뒤나 창고에서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심지어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한 매장은 고객 대부분이 유색인종이라며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이는 브랜디 멜빌이 원하는 미학을 가진 고객만 받을 뿐 아니라, 직원도 뽑겠다는 원칙이라고 합니다. 미 타임지는 “브랜디 멜빌은 현재 인종 차별과 관련해 여러 건의 소송에 걸려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3>이탈리아 부자(父子)가 만든 미 캘리포니아 브랜드
브랜디 멜빌은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실비오 마산이 그의 아들 스테판과 만든 브랜드입니다. 그러나 이 브랜드가 유명해진 것은 2009년 미 LA 웨스트우드 지역에 첫 미국 매장을 열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이 브랜드는 ‘브랜디 멜빌’이라는 브랜드명에 대해, “미국 소녀 브랜디와 영국인 멜빌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전통적인 광고는 하지 않고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만 올립니다. 현재 브랜디 멜빌의 인스타 팔로워수는 317만명. “마케팅 직원 중에는 10대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CEO 등 임원진과 회사의 역사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습니다. “이탈리아 아저씨들이 만든 미국 소녀들을 위한 의류 브랜드”라는 것은 회사 이미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브랜디 멜빌은 미국, 영국 등을 비롯해 전 세계에 100여개 매장이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 싱가포르, 홍콩,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 이어 6번째입니다. 과연 이 브랜드는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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