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는 젊어서 뭐 했느냐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노후에 돈 걱정 없이 살려면 얼마 정도 준비해 놔야 할까요?”
“실거주 집 한 채 빼고 퇴직 때까지 10억 모으는 게 목표입니다. 물려받을 곳 없는 흙수저 맞벌이인데 충분할까요?”
40~50대가 많이 모이는 중년 커뮤니티에는 노후 준비에 대한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검증된 방식을 벤치마킹해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다.
본인 스스로 ‘노후 준비가 아주 잘 되어 있다’고 자신하며 ‘은퇴 천국’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2023년)를 토대로 만든 ‘노후 준비가 탄탄한 50대 가정의 통장’을 소개한다. 통계청이 아직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50대 가구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노후 준비 설문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황혼기의 여유는 현금 흐름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묶여 있으면 소용없어요. 부동산은 마음의 평안을 주지만, 진정한 소비 여유는 현금이 매달 들어와야 가능합니다.”(70대 은퇴자 A씨)
인생 황혼기의 승패는 현금 흐름에 달려 있다.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생기는 현금 흐름은 생활비를 충당할 뿐만 아니라, 의료비나 예기치 않은 지출에도 대비할 수 있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
50대 현역 가구주 가정의 노후 준비 자신감을 5등급(최고, 우수, 보통, 미흡, 최저)으로 나눠 살펴보면, 현금 흐름의 중요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총자산 13억4000만원을 보유한 비수도권 50대 가정의 노후 준비 자신감은 가장 높은 최고 등급이었다. 수도권에서 2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보다도 노후 준비 자신감이 더 높았다.
왜 그런 걸까. 비수도권의 노후 준비 1등급 그룹은 금융 자산이 3억4000만원 정도로 수도권 2등 그룹보다 전체 금액은 살짝 적었다. 하지만 전체 자산 중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25%로, 수도권의 노후 준비 2등 그룹(20%)보다 높았다. 주거비나 생활비 등 고정 지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수도권에서 충분한 유동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래 불안증이 낮은 것이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노후 준비 자신감은 자산 총량보다는 현재의 안정적 생활 유지 가능성에서 나온다”면서 “총자산 중 금융자산의 비율이 높을수록 유동성이 확보되기 때문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더 쉽게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노후 준비 자신감이 최고인 수도권 50대 가정의 총자산은 약 32억원이었다. 이 중 부동산은 26억원이고, 금융자산이 5억원이 넘었다. 부부가 희망하는 은퇴 생활비는 월 591만원으로 높은 편이었다. 김진웅 연구위원은 “자산가들은 부동산 비중이 높다고 해도 절반 정도는 거주 외 수익형 부동산이어서 이를 활용해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구조를 만든다”고 말했다.
한편, 노후 준비 자신감이 최저 등급인 50대 가정은 보유 중인 금융 자산이 4000만~6000만원에 불과했다.
◇퇴직 전에 현금 파이프라인 구축
50대 회사원 이모 씨는 “부모님의 노후를 옆에서 지켜보며 경제적 준비가 부족할 때 겪는 어려움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지만, 자산을 점검할수록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퇴 시점이 임박하기 전에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서 현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두라고 조언한다.
금융 전문가 신동훈씨는 “부동산 비중 조절은 전적으로 개인의 노후 계획과 생활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안전한 노후를 맞이하려면 현금 자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은퇴 후 들어올 현금이 전혀 없는데 부동산만 끼고 있다면 절반은 정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가령 1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는 5억 정도 아파트에 살면서 나머지 5억원을 금융 상품에 가입하고, 국민연금까지 합해 매달 200만원 이상 현금이 들어오게 구조를 짜라는 것이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부동산은 가능한 월세 나오는 부동산으로 대체하고, 나머지는 개인 연금이나 매달 현금이 나오는 금융상품(연 5~7% 배당이 나오는 상장지수펀드) 등에 넣어서 현금이 마르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택 다운사이징의 심리적 장벽
퇴직 후 현금 흐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집 한 채가 전부인 상황에서 유동성을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주택 다운사이징(규모 축소)이라는 의사 결정은 심리적 부담이 크다.
<반은퇴>를 쓴 신동국 작가는 “주택 다운사이징을 할 때 타인의 시선이라는 심리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30평 아파트에서 18평으로 이사했다거나,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작은 주거 공간이나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자녀 결혼식이나 손주와의 관계에서 불편을 겪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결국 비용 절감과 지출 관리를 위한 선택입니다. 이런 현실을 수용하고, 자신의 삶에 맞는 결정을 내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