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크룹 회장과 체어맨. /씨에스알와인

“와인이 없으면 계약도 없다.”

유명한 남미의 격언입니다. 독일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는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믿을 때는 조심하라”고도 했습니다. 그만큼 와인은 비즈니스에서 빠질 수 없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어떤 와인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고민입니다. 와인을 어떻게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을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서른 일곱번째 이야기입니다.

<1>CEO로 승진하셨나요? ‘회장님’ 와인 어떠세요?

인사철이 되면 물량을 확보하느라 바빠지는 와인이 있습니다. 미 나파밸리 ‘크룹 브라더스’의 전문가 시리즈입니다.

1991년 의사였던 잔 크룹 박사는 미국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나파 밸리 부동산 광고를 보게 됩니다. 이 광고는 평소 와인을 좋아한 그의 관심을 끌었고, 첫 방문에서 100년된 포도나무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남동생 바트와 함께 7년에 걸쳐 약 45만t의 화산암을 제거하며 부지를 개발했고, 1998년에는 병원도 매각하고 와이너리에 올인합니다. 그렇게 크룹 형제가 만든 ‘크룹 브라더스’가 탄생했습니다.

크룹 브라더스 전문가 시리즈 /씨에스알와인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2004년 출시된 ‘더 닥터’입니다. 잔 박사는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담아 ‘더 닥터’를 출시했는데, 개업하는 의사들을 위한 축하 선물로 유명해진 것입니다. 와인 라벨에는 크룹 박사의 자화상 같은 의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월스트리트 금융가의 요청으로 ‘더 뱅커’가 출시됩니다. 이후 교수님 승진 와인으로 자주 사용되는 ‘더 프로페서’, 변호사 임용이 된 분들에게 선물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디 애드버킷’ 등이 출시됐습니다. 디 애드버킷에는 법원으로 향하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이 담겼는데, 변호사인 크룹의 조카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전문가 시리즈 중 최상위 와인인 ‘더 체어맨’이 새롭게 출시됐습니다. 대표님들이 승진 축하 선물로 사용하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중후한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 카베르네 쇼비뇽을 98% 사용했고, 19개월간 프렌치 오크 에이징을 했다고 합니다. 양갈비 구이와 불고기 피자, 초콜렛 트뤄플 등과 잘 어울립니다.

<2>회사를 창업했다면, 와인계의 잡스 와인!

와인업계 스티브 잡스 폴 홉스 /이혜운 기자

경영진과 창업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조금 다릅니다. 창업자에게는 조금 더 혁신적이고, 개척자적인 정신이 요구됩니다.

와인 메이커 폴 홉스는 ‘와인업계 스티브 잡스’로 불립니다. 2013년 미 포브스가 그를 소개하며 붙인 별명입니다. 포브스는 그에 대해 “품질 광신론자이자, 모두가 캘리포니아에 열광할 때, 아르헨티나의 와인 제조 잠재력을 알아본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폴 홉스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권유로 UC 데이비스에서 양조학 석사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의 논문을 본 로버트 몬다비가 그의 천재성에 매료돼 스카우트하면서 1978년부터 미국 프리미엄 와인의 아이콘인 오퍼스 원 양조팀의 창립 멤버로 본격적인 와인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1984년 일하던 오퍼스 원을 떠나 여러 곳에서 경력을 쌓은 뒤 1991년에는 자신의 와이너리를 세우고 지금은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우뚝 섰습니다. 로버트 파커는 그를 ‘올해의 와인 인물’로 두 차례나 선정했습니다.

폴 홉스와 그의 와인 /에노테카 코리아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두 개의 와이너리를 포함해 뉴욕, 아르헨티나, 프랑스, 아르메니아, 스페인까지 총 7개의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좋은 테루아를 찾고 싶은 열정 때문입니다. 로버트 파커는 폴 홉스의 이러한 능력을 두고 ‘트러플 사냥개’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누군가는 저에게 왜 굳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까지 힘들게 개척하냐고 묻지만, 저는 이런 도전 자체가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며 “성공이 보장된 지역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굴해 와인이라는 결과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양조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혁신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해 ‘양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폴 홉스는 “처음 양조 일을 시작했던 1970년대는 위생 상태나 기술적인 부분이 턱없이 부족하던 때였다”며 “이런 점들을 개선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싶었지만 딱히 모델로 삼을 만한 와이너리를 찾을 수 없어 나사(NASA)에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와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폴 홉스 샤르도네 러시안 리버 밸리’입니다.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로 제공되는 와인입니다. 붉은 사과의 껍질, 살구, 복숭아, 파인애플, 레몬 제스트 등의 풍부한 향이 코를 유혹합니다.

<3>해외 협력사들에게 선물할 때는 ‘미래’ 와인

제임스 서클링과 마리 서클링의 미래 와인 /아영 FBC

방한한 세계적인 협력사와 만난 자리에서는 어떤 와인이 좋을까요? 뭔가 이야깃거리도 있고, 한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와인이 좋지 않을까요? 협력사들과 추구하는 것은 밝은 ‘미래’, 세계 최고의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과 그의 한국인 아내 ‘마리 킴’이 한정판으로 만든 ‘미래 빈야드 피노 누아 2023′입니다.

평생 와인 마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서클링에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만드는 것은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뉴질랜드 북섬 마틴버러를 방문하다 매물로 나온 와이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평소 ‘뉴질랜드의 로마네 콩티’라고 불릴 정도로 포도 품질이 좋던 곳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홍콩에 있던 마리에게 전화를 했고, 공동 명의로 포도밭을 구입했습니다. 뉴질랜드 와인밭의 오너가 한국인인 것은 거의 처음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와인의 이름을 한국어인 ‘미래’로 지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란 의미도 담았다고 합니다.

미래 와인 /아영 FBC

제임스 서클링은 “화장을 하지 않은 깨끗한 피노 누아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포도 한 알까지 그와 마리의 정성이 들어간 미래 와인의 맛은 그 표현 그대로입니다. 1980년대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와인 같기도 합니다.

와인 라벨의 ‘미래’라는 도안은 유명 서예가 강병인 작가의 작품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먹을 묻혀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첫 한글 와인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라벨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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