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DB

국내 주식시장에서만 144조4940억원(2024년 10월 말 기준)을 굴리는 ‘큰손’ 국민연금공단은 어수선했던 작년 말 어떤 종목 지분을 늘리거나 줄였을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최신 공시 내용을 살폈다. 다양한 업종·종목에 대한 매매가 이뤄졌다. 큰 줄기를 요약하자면 잡음이 생긴 기업 비중은 줄이고, 단기 급등한 종목은 일부 차익 실현을 했다. 또 국민연금은 투자 여건이 개선된 기업에 대해선 추가 매수에 나섰다. 투자의 기본인 리스크 분산을 철저히 지켰다는 의미다.

일러스트=손민균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최근 ‘2024년 4분기 주식 대량 보유 내역’을 공시했다. 여기에는 총 87개 종목이 담겼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규정에 따라 지분율이 5%를 넘었거나 5% 이상 보유 중이던 종목의 지분율이 1% 넘게 변동하면 분기 단위로 공시하고 있다.

눈에 띄는 매매 동향을 정리해 보면, 금융·증권주 지분을 1% 이상 늘린 사례가 다수 보인다. 하나금융지주는 8.19%에서 9.19%, NH투자증권은 7.29%에서 8.35%, 한화투자증권은 5.04%에서 6.07%로 증가했다. 변동률이 1%포인트(P)를 넘지 않아 공시 대상에선 빠졌으나, 국민연금은 작년 4분기에 키움증권 지분도 12.29%에서 12.83%로 늘렸다.

지난해 하반기 증시 체력이 약해지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주가 방어에 효과적이고 배당 매력도 있는 금융·증권주 비중을 늘린 걸로 풀이된다. 증권주의 경우 밸류업(가치 제고) 기대감에 해외주식 거래대금 증가에 따른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기대감까지 겹쳐 투자 매력이 부각한 상태다. 또 국민연금은 일진전기(3.99→8.46%), 산일전기(5.09%) 등 산업 전망이 밝고 수요도 꾸준한 전력망 관련주도 사들였다.

반면 논란에는 비중 축소로 대응했다. 일례로 국민연금은 이수페타시스 지분율을 10.74%에서 7.43% 낮췄다. 이 회사는 작년 11월 8일 장 마감 후 제이오 지분 인수를 위해 5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기존 발행 주식 수의 31.8%에 달하는 규모였다.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란 비판이 쏟아지면서 이 회사 주가는 급락했다.

또 국민연금은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KCGI와 소액주주 연대 간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DB하이텍 비중을 9.32%에서 7.27%로 줄였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KCGI가 DB하이텍 지분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부당거래로 소액주주에게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은 제주항공 참사 직후인 지난달 30일엔 같은 저가항공사(LCC)인 진에어 지분율을 6.23%에서 5.01%로 낮추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운 고려아연 비중은 7.49%에서 4.51%로 줄였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고려아연 주가는 40만~50만대였다. 그러나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분쟁이 시작된 후 무섭게 치솟기 시작해 지난달에는 200만원을 돌파했다. 현재는 80만원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주가 급등을 특정 이벤트에 따른 단기 과열로 보고 일부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연금이 업종에 집중하기보다 개별 종목 대응에 주력한 점도 작년 4분기의 특징이다. 반도체 등 주도 업종이 사라지고 순환매 장세가 반복되자 큰 손도 시장 분위기에 맞춰 리스크를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가령 화장품주 가운데 코스맥스 지분은 늘렸지만 토니모리 지분은 줄이는 식이다. 또 국민연금은 반도체 이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반도체 검사용 장비 생산업체 리노공업 비중은 4.41%에서 5.00%로 늘렸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리노공업에 대해 “전방 수요 부진과 반도체 업종의 투자 심리 위축 등으로 주가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인공지능(AI)·자율주행·이차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 리노공업의 성장 스토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다. 중장기 투자 매력은 충분하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