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시장은 고점에서 매수해도 추가 매수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퇴직연금 가입자 이모씨)

노후 대비를 위해 가입하는 퇴직연금 계좌에서 미국 투자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기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연 3%대의 낮은 이율로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데다 국내 증시는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00조원을 넘긴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10년 안에 10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15일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NH투자증권에 의뢰해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잔고 기준 상위 상장지수펀드(ETF) 15개를 뽑아봤더니, 이 중 14개가 미국 주식·채권 시장에 연동되는 상품이었다. ETF란, 특정 지수나 종목 등을 추종하는 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다.

미국의 대표 지수인 S&P500과 나스닥100에 연동되는 ETF들이 퇴직연금 잔고 상위권에 위치했다. S&P500에 연동되는 ETF는 최근 1년 수익률이 38% 안팎이고, 나스닥100 연동 ETF 역시 39~40%에 달한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연금 계좌는 아무래도 안전하게 투자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대표 지수형 ETF에 자금을 넣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상품명에 TR이 붙은 상품은 배당이나 이자를 자동 재투자하기 때문에 퇴직 연금에서 장기 투자하면 복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미국 장기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도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최근 성과는 부진하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로 채권 금리가 치솟으면서 최근 석 달 동안 8% 넘게 하락했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미국에 투자하는 상품이지만 환헤지형이라서 최근 원·달러 상승에 따른 수혜를 받지 못했다“며 ”듀레이션(평균 회수 기간)이 약 17년인 미국 장기 채권에 투자해 연 3.7-3.8% 수준의 배당수익률(환헤지 감안)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 금리 변동성이 확대된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최근에는 펀드 유입액의 90% 이상이 퇴직연금 자금으로 이루어진 ETF도 등장했다. 신한자산운용이 지난해 출시한 ‘SOL 미국배당 미국채혼합50’이 주인공이다. 미국 다우존스 배당주와 미국 10년물 채권에 각각 50%씩 투자하는 혼합형 ETF로, 최근 3개월 수익률은 3.4%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신한운용 관계자는 15일 “전체 순자산의 90%에 해당하는 약 1800억원을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집중 매수했다”면서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을 주고객층으로 겨냥해 설계했는데, 전략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 필요”

한편,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과 관련, 일각에선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서 균형 잡힌 연금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 2년간 미국 증시 수익률은 97~98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20%대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과를 거뒀다”면서 “하지만 미국 주식도 2000년부터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있고 최근 미국 정부의 재정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만큼 안전자산 배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