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주식시장에서는 ‘중복 상장 테마주(株)’가 유행이다. 중복 상장이란, 모(母)기업이 상장된 상태에서 자(子)회사나 계열사가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오야코상장(親子上場)이라고 부른다.
중복 상장은 한국 주식시장의 대표적인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힌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증시에 상장되면 주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해 시장 신뢰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회사와 자회사 모두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낮아서 투자자 시선도 곱지 않다. 최근 중복 상장 논란에 휩싸였던 종목으로는 LG그룹의 IT 서비스 업체 ‘LG씨엔에스’가 대표적이다. 모회사인 LG(지분 46%)는 지난달 자회사 상장 이후 주가가 8% 하락했다. LG씨엔에스 역시 4일 공모가(6만1900원) 대비 25% 하락한 4만6550원에 마감했다.

✅韓, 중복 상장 비율 18.4% 주요국 중 최고
일본에서도 중복 상장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로 비판받고 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일본의 중복 상장 비율은 4.38%로, 한국(18.4%)보다는 훨씬 낮지만 미국(0.35%)보다 크게 높다.
그런데 최근 일본 기업들이 중복 상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히려 역발상 투자 기회로 부각되고 있다. 모회사가 자회사를 공개 매수(TOB·Take-Over Bid)하는 과정에서 매수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MUFG증권의 나카자와쇼(中沢翔) 주식 전략가는 “일본에도 중복 상장 기업이 많은데, 기업 지배구조 개혁 등 시장 압박이 강화되면서 모회사가 자회사를 공개 매수(TOB)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현금이 많은 모회사를 둔 자회사는 TOB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회사는 TOB를 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에게 프리미엄을 얹어 매수하므로, 자회사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은 비싼 값에 주식을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장 자회사 16곳인 ‘이온’의 변화
지난달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온(AEON)은 쇼핑센터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는 이온몰과 쇼핑센터 보수·감리 등을 책임지는 이온딜라이트 등 2개 자회사를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완전 자회사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온은 일본 주식시장에서 가장 많은 상장 자회사(16곳)를 보유해 대표적인 중복 상장 기업으로 꼽혀왔다. 그런데 이온이 중복 상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크게 반응했다. 이온처럼 중복 상장 문제를 가진 다른 일본 기업들도 같은 길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온의 공개매수 발표 이후, 자회사인 이온몰과 이온딜라이트는 3일 각각 20%, 15% 상승하며 마감했다. 이온 역시 3.5% 오르며 3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日, 중복 상장 2006년의 절반으로 감소
일본에서 중복 상장은 지난 2000년대 자금 조달 다양화 등의 목적으로 크게 늘었다. 닛케이신문 보도(2024년 7월 23일)에 따르면, 중복 상장은 일본 특유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모자회사 거래에서 모회사 이익이 우선되고, 자회사 소액 주주 이익은 침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경제산업성(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은 지난 2019년 기업 지배구조 개혁 지침에서 모회사와 상장 자회사 간의 의사 결정 독립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모회사가 자회사를 통제하거나 자회사가 독립적인 경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에서다.
도쿄증권거래소도 2023년 모회사에 상장 자회사를 유지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와 소액 주주 보호 대책을 명확히 공지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와 거래소의 강력한 압박은 효과를 봤다. 일본의 중복 상장 기업 수는 2023년 190곳으로, 2006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전문가 “중복 상장 줄어야 저평가 해소”
SK엔무브, LS이링크, LS에식스솔루션즈, HD현대로보틱스, 두산스코다파워, KOC전기, DN솔루션즈, 제노스코...
최근 중복 상장 논란이 불거지며 투자자 불만을 사고 있는 IPO(기업공개) 추진 기업들이다. 한국은 중복 상장 비율이 18%로 이미 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좀처럼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 위기 이전만 해도 코스피 중복 상장 비율은 5% 이내였지만 이후 10% 전후로 상승했다”면서 “한국의 중복 상장 비율은 이머징 비교 국가인 대만, 중국과 비교해도 비정상적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합병을 통해 중복 상장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세금이나 자금 확보 등의 이유로 중복 상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 등 미국 기업들은 수백 개의 자회사, 수천 개의 손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증시에 상장된 곳은 모회사 하나뿐”이라며 “중복 상장은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는 밸류업이 아닌 밸류 파괴이며, 한국 증시 저평가를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