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닐 때는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니까 다들 나랑 비슷한 수준이겠거니 생각했어요. 하지만 퇴직하고 월급이 끊기고 나니 부(富)의 격차를 본격적으로 체감하게 되네요.”(60대 은퇴자 김모씨)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양극화가 노후 생활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노후 현금 흐름의 핵심인 연금을 충분히 준비한 직장인은 퇴직 후가 불안하지 않다. 하지만 연금 대비가 부족한 사람은 생계를 위해 더 오래 일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정효영 미래에셋증권 연금컨설팅본부장은 “같은 회사에 다녔더라도 복리 효과와 세제 혜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연금 자산 규모는 크게 달라진다”면서 “예금에만 돈을 넣어두면 자산은 쌓이겠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제 가치는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우등생 고수익 비결은
상품과 지역 등 투자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연금 격차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운용 방식과 투자 성과에 따라 연금 자산의 규모가 달라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특히 직장인이 노후 대비를 위해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수익률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20일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IRP 수익률 상위 10% 그룹의 1년 성과는 27%에 달한 반면, 하위 10% 그룹은 -4%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수익률 상위 10% 그룹은 글로벌 증시 호황 속에 미국 시장에 적극 투자하는 전략으로 고수익을 얻었다. 우등생 포트폴리오를 보면, 미국 대표 지수인 나스닥, S&P500에 연동되는 지수형 상장지수펀드(ETF)가 보유 종목 1~2위를 차지했다. 지수형 ETF는 여러 종목을 포함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손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 밖에 미국 기술주나 반도체 업종에 집중 투자하는 ETF와 중국 전기차 ETF 등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수익률 하위 10% 그룹의 계좌는 미국 장기채나 리츠(부동산 투자신탁) 등에 집중 투자하는 바람에 타격을 입은 경우가 많았다. 정효영 본부장은 “만기가 긴 장기채는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전체 자산의 일부만 편입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평가 손실 중이지만 미국의 정책금리 하락(채권 수익률 상승)은 시간문제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유한다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용 성과로 더 커지는 연금 격차
대다수 직장인은 연금을 연말정산을 위한 절세 수단으로만 활용할 뿐, 적극적으로 운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금 자산은 장기적으로 운용되는 만큼, 매년 작은 차이가 쌓이면 결국 큰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IRP 계좌 등에서 1년 수익률 3%포인트 차이는 당장은 얼마 되지 않아 보여도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큰 차이를 낳는다.
매달 75만원씩, 연 900만원(세제 혜택 한도)을 41세부터 20년간 각각 연평균 3%, 6%, 9%로 운용한 후에 61세부터 연금 형태로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세제 혜택 환급액(118만원)도 전부 재투자하는 조건이다. 미래에셋증권 계산에 따르면, 3% 수익률로 운용된 연금 통장은 70세 시점에 월 156만원가량 받고, 6% 수익률로 굴렸으면 월 276만원, 9%인 경우엔 월 488만원까지 늘어난다. 똑같이 통장에 돈을 부었는데 노후 연금 수령액은 최대 331만원 차이 나는 것이다.
연금 자산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후에 대비해 가입하는 연금은 안정적인 장기 수익률을 올려야 하는 만큼, 연평균 6.8%씩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는 국민연금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국민연금의 돈 굴리기는 다양한 상품과 지역에 골고루 투자하는 자산 배분이 핵심이다. 최근 글로벌 큰손들은 고점 논란이 거세진 미국 증시에서 수익을 일부 실현한 뒤, 중국이나 유럽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기 시작했다.
만약 개인이 자산 배분을 하기 어렵다면 나이에 따라 자산 배분을 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나 밸런스펀드(BF)를 활용하는 것이 방법이다. TDF는 은퇴 시점에 따라 자산을 자동으로 분배해 주는 반면, 밸런스펀드는 투자 성향에 맞춰 위험자산 비중을 조정한다. 지난 2017년 처음 출시된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45’는 연평균 12%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