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주택가격 전망을 발표하는 3대 기관의 올해 집값 전망치가 모두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도 집값 전망이 실제와 딱 들어맞는 경우는 없었지만 올해처럼 격차가 큰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국가승인 통계를 생성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 한국감정원의 전망치가 가장 현실과 괴리가 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시로 부동산 대책을 내며 시장에 개입하고 있어 중장기적인 시장 전망이 불가능해졌다"고 진단한다.

◇수도권 집값 0.8% 떨어진다 전망했지만 4.5% 올라

한국감정원은 올해 1월 ’2020년 부동산시장 전망'을 발표하며 연간 전국 주택가격이 0.9% 하락할 것이라 진단했다. 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집값은 0.8%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올해 들어 8월까지 전국 집값은 3.1% 올랐고 수도권은 4.51% 올랐다. 이는 한국감정원이 집계하는 매매가격지수를 토대로 산출한 것이다. 올 가을 집값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 한, 감정원의 연초 전망치는 현실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민간 조사기관의 전망치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한건설협회 산하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전국 집값이 0.8%. 수도권 집값은 0.3% 떨어질 것으로 연초 전망했다. 감정원만큼 격차가 크진 않지만 집값의 방향성조차 맞추지 못한 셈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연초 전국 집값이 보합(0%), 수도권은 0.8% 오를 것으로 예측해 상대적으로 가장 정확한 전망치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택산업연구원은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공동 출연해 만든 기관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시장 상황이 당초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자 지난 7월 하반기 시장동향을 추가로 발표하며 “하반기 전국 집값은 2.1%, 수도권은 3.4%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일종의 수정 전망치를 낸 셈이다. 하지만 가장 현실과 동떨어진 전망치를 냈던 감정원은 아직 별다른 수정 전망치를 내고 있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소속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감정원 통계를 근거로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감정원의 집값 전망치가 가장 현실과 동떨어진 셈”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관제(官製) 통계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시장 무너졌는데 전망이 무슨 소용?

전문가들은 이렇게 전문 기관의 집값 전망마저 현실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간섭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전망 기관들이 예측하지 못한 정책 변수가 너무 잦고, 강도도 세기 때문에 사전에 집값을 전망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올해 집값 하락을 전망하던 기관들은 ’12⋅16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주택 수요가 줄어들고 보유세 등 늘어나는 세금 부담으로 집을 파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 같은 전망을 냈다. 실제 대출 규제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겹치며 올해 4월 중순까지 주택 수요가 급감했고 서울 아파트값은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4월말 이후 절세 목적의 급매물이 일부 나오고 이 매물들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거래가 반짝 늘었고 집값도 다시 꿈틀댔다. 시장에서는 “집값이 다시 급등할 것”이란 의견과 “잠시 반등 후 다시 주춤해질 것”이란 의견이 비등했다.

집값이 꿈틀대자 정부와 여당은 6⋅17, 7⋅10, 8⋅4 등 석달 사이 3번의 대형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앞의 두번은 다주택자 등에 대한 세금 부담을 강화하는 규제였고 8⋅4 대책은 주택 공급방안이었다. 하지만 다주택자를 규제하면서 서울 핵심지역의 아파트에 대한 쏠림 현상은 심해졌고 공급방안이 실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규제가 쏟아지는 사이 시장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집을 못산다”는 불안심리가 확산했고 30대의 패닉바잉까지 겹치며 중저가 주택까지 급등해버렸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많은 전문가들이 올해의 주택시장을 전망할 때 지금처럼 많은 대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며 “정부의 잦은 개입으로 인해 시장 왜곡이 심해졌고 이제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