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토교통부는 “올 들어 10월까지 전국 주택 인·허가 물량은 32만6237가구”라고 발표했다. 최근 5년(2015~19년의 각 10월까지) 평균보다 33% 급감했다. 인·허가 실적은 주택 공급 관련 통계 중 가장 앞선 지표로 통한다. 인·허가를 해야 착공·분양·입주가 이뤄질 수 있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정권별 서울 아파트 땅값·집값·공시가격·공시지가 변동 분석 발표’ 기자회견에서 경실련 관계자들이 통계 자료가 인쇄된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경실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땅값’은 노무현·문재인 정부 8년간 2476만원이 상승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은 331만원이 올랐다. /김지호 기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5년 전 정부 인·허가를 줄인 탓에 아파트 공급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최근 전국적인 집값·전셋값 상승이 전(前) 정부 탓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했던 김 장관이 갑자기 말을 바꾼 것도 큰 비난을 받았지만, 확인 결과 그의 말 자체가 사실과 달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연평균 주택 인·허가는 56만5184가구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72만6048가구)이 28%나 많았다. 2013~2016년 평균 인·허가는 61만1686가구다. 아파트 인·허가 역시 최근 3년 평균 41만7483가구로, 2016년(50만6816가구)에 못 미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통계 왜곡과 궤변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숨기려 한다”며 “이번 정부가 집값 잡기에 실패한 것은 주택 공급은 외면하고 수요를 억누르는 규제 일변도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5년 전 주택 인·허가, 文 정부보다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국 주택 인·허가 실적은 2017년 65만3441가구, 2018년 55만4136가구, 2019년 48만7975가구로 계속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5년의 전국 인·허가 물량은 76만5328가구, 2016년은 72만6048가구였다. 2016년이 전년보다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어느 해보다 많았다. 김 장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전년도에 비해 일시적으로 인·허가 물량이 줄어든 해를 지적하면서, 주택 시장 불안 원인을 전 정부에 돌리는 억지를 쓴 것이다.

주택 인허가 추이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허가는 지자체장의 권한이고, 사업 여건에 따라 인·허가 후 입주까지 시차가 발생한다”며 “최근의 전세난을 과거 정부의 인·허가 실적과 연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는 11·19 전세 대책을 발표하면서 “최근 3년간 주택 입주 실적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 주장처럼 인·허가 물량이 5년 뒤 입주 물량으로 소화된다고 가정하면, 이번 정부 들어 올해까지 입주 물량이 풍부했던 것은 박근혜 정부 때 주택 인·허가 물량이 많았던 덕분이다.

◇공급 없이 ‘투기와 전쟁’만… 투기꾼 대신 국민을 잡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후 지금까지 “주택 공급은 충분하며, 투기 수요가 집값을 올렸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부동산 대책 대부분이 대출 규제, 다(多)주택자 세금 중과 등 수요를 옥죄는 데 집중됐다. 수요가 넘치는 지역에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는 외면했다. 2018년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와 올해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며 가장 현실적인 단기 공급 방안인 재건축·재개발을 사실상 올스톱시켰다.

공급은 간과하고 수요 억제에 집중한 3년 반 사이 시장은 정부 정책 의도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집을 사겠다는 심리는 더 불붙었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부가 인용하는 한국감정원 통계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난달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16.3% 올랐다. 전국 미분양 주택도 2만6703가구(10월 기준)로, 2003년 10월 이후 1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셋값도 급등하고 있지만, 정부는 선호도가 떨어지는 빌라 위주 공급 대책만 내고 있어 ‘맹탕’이란 평가를 받는다.

시민 단체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을 비판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기에 서울 아파트 땅값(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의 땅값)이 3.3㎡당 평균 2476만원 올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상승액(331만원)의 7.5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주택 공급만 원활하게 이뤄졌더라면 정권 초기 집값이 좀 올랐어도 지금쯤이면 안정됐을 것”이라며 “‘공급은 충분하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대책을 내놔도 집값 안정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