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 폭탄’ 때문에 잠잠하던 서울 등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세 대란이 장기화하면서 전세 수요가 매수세에 가세하는 분위기다. 급등한 전셋값이 주택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는 상황에서 거래량까지 회복되며 집값 불안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난 장기화로 전세 세입자들이 매수세로 돌아서면서 집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서 바라본 종로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정부 대책의 ‘약발’이 전혀 듣지 않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집값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오히려 전국에서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다발로 오르는 상황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전용면적 84㎡ 아파트에서 전세살이 하는 정모(44)씨는 “2년 전보다 집값은 4억원, 전세 시세는 2억5000만원 올랐다”며 “내 집 장만은커녕 전세 만기가 되면 서울에 전셋집조차 못 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세 난민' 가세로 매매 거래 늘어

14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1월 서울의 아파트 거래는 4452건으로 10월 거래량(4369건)을 넘어섰다. 신고 기한(12월 30일)까지 보름가량 남아 있는 것을 감안하면 5000건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거래는 6월(1만5585건)에 정점을 찍었고, 7월(1만643건)에도 1만건을 넘겼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계속 오른 것을 학습한 30~40대의 ‘패닉 바잉(공황 구매)’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그러나 수도권 대부분을 규제 지역으로 묶은 6·17 대책과 부동산 세금 규제를 강화한 7·10 대책이 나오고 8월부터 주택 매매 거래가 급감했다. 9월 3763건까지 줄었던 거래량은 서울 외곽 지역 중저가 아파트 위주로 매수세가 살아나며 10월부터 두 달 연속 증가했다.

1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구로구(370건)가 한 달 사이 58% 증가했고, 강남구(293건)와 금천구(89건)도 같은 기간 30% 이상 늘었다.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외곽 지역과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을 가리지 않고 매매 거래가 살아나는 분위기다. 이남수 신한은행 장한평역금융센터 지점장은 “전세난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에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무주택자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역시 매매 거래 회복세가 뚜렷하다. 11월 거래량(1만8019건)이 이미 10월 거래량(1만7700건)을 추월했다. 최근 집값이 들썩이는 고양의 경우, 11월에만 2479건의 매매 거래가 성사돼 10월 거래량(1395건)보다 77% 급증했다.

◇”대책 나올 때마다 집값 올라”

시장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에 불확실성만 늘어나고, 집값이 더 오른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다주택자 압박에도 시장에는 매물이 쌓이지 않고, 가끔 나오는 매물은 대기 수요자들이 경쟁적으로 가져가면서 매매가와 전셋값 모두 신고가(新高價) 경신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매매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집값 상승 폭은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지난주 KB국민은행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前週) 대비 0.37% 상승, 9월 둘째 주 이후 11주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경기도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0.44%)은 6월 22일 조사(0.49%) 이후 23주 만에 최고치였다.

정부가 전세 대책을 발표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공임대주택 홍보에 나서지만, 임대차 시장에선 전셋값 폭등과 비정상적인 월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동산 담당자는 “최근 집값 상승은 전세 세입자 등 실수요자가 주도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다주택자를 투기 세력으로 지목해 각종 규제를 집중했지만, 결국 집 없는 서민층의 불안감만 커지고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만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