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직원들의 광명 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해당 지역의 토지 거래가 정부 부동산 대책 발표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정보 유출이 의심되고 있다. 4일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김상훈 의원실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토지거래는 지난해 8·4 대책과 지난달 2·4 대책 직전에 집중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이날 오전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땅에 묘목이 심어져 있다. /연합뉴스

“뒤통수 맞은 기분이네요. 우리 같은 사람은 언제 개발될지 모르니까 팔았지, 이렇게 금방 신도시 될 줄 알았으면 절대 안 팔았죠.”

작년 6월 서울에서 온 매수인 3명에게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땅 1200평을 판 K(63)씨 부부는 4일 본지 기자를 만나 “그때 팔지 말아야 했는데”라고 하소연했다. K씨는 “작년 상반기 땅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원하는 값을 쳐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며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가격에 선선히 계약하고 땅을 샀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변 발표에 따르면, K씨 부부의 땅을 산 사람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이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4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달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지구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 13명 중 3명은 총 7개 필지의 토지 거래에 관여해 5필지씩 땅을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낀 거래 금액은 64억8000만원에 달하고, 보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입 후 1000㎡ 이상으로 지분을 나누는 ‘전문가적 기법’도 사용했다. 이들은 LH 직원이라는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계약 파기는 절대 안 된다”는 다짐을 받기도 했다.

◇'타짜 직원', 동료·가족 끌어들였나

수도권에서 각기 다른 지역본부에 근무하는 이들 3명이 ‘중심 고리’가 되고 친분이 있는 동료와 가족들을 대거 끌어들인 정황도 나왔다. 이 3명 중 2명은 배우자 명의로도 땅을 샀고, 나머지 1명은 동생과 함께 땅을 사들였다. 투기 의혹에 연루된 직원 13명 중 LH 사내 커플도 2쌍이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직장 동료와 가족을 동원해 거액의 대출을 일으켰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지를 쪼갠 행태가 전문가의 솜씨로 보인다”고 말했다.

LH 과천의왕본부에서 토지 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50대 A씨는 2018년 4월 시흥 무지내동 토지 5905㎡를 4명 공동 명의로 19억4000만원에 사들였다. 땅을 산 4명은 A씨와 그 배우자, 그리고 LH의 50대 ‘사내 부부’ 2명이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4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에 대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A씨는 약 2년 뒤인 2020년 2월, 7명 공동 명의로 시흥 과림동 토지를 22억5000만원에 샀다. 7명 중 A씨를 포함한 5명이 LH 직원이었고, 나머지 2명은 직원의 배우자였다. 5025㎡ 넓이의 땅은 매입 직후 4개 필지로 쪼개졌다. 각 필지는 개발 후 아파트 특별공급을 받는 기준인 1000㎡ 이상으로 나뉘었다. 한 민간 감정평가업체 관계자는 “비공개 정보를 이용했는지 여부를 떠나 이번 LH 직원들의 땅 매입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했다는 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돈 받고 ‘땅 투자’ 강의하는 직원도

실제로 A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고, LH 안팎에서 토지 투자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2010년대 초엔 ‘토지 고수’로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에게 ‘단독주택 용지’를 유망 상품으로 꼽았고, LH가 개발한 땅은 도로·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민간이 판매하는 땅보다 가격 상승 여력이 많다고 추천했다.

광명·시흥 지구 토지 매입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LH 서울지역본부에 근무하는 40대 직원 B씨가 부동산 투자 사이트에서 유료로 강연하면서 수익을 챙겼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 직원은 익명을 쓰면서 자신을 ‘대한민국 1위 토지 강사’라고 홍보했다. B씨는 4일 자신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이 모인 SNS에 “겸업 부분은 회사와 잘 얘기해 처리하도록 하겠다.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러나 LH는 이날 자체 감사 후 B씨를 직위 해제했다.

LH 직원의 토지 매입이 집중된 시흥시 과림동에서 정부 부동산 대책 발표 전 토지 거래가 급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작년 ‘8·4 공급대책’ 직전 3개월간 167건이 거래되다가 대책 발표 후 8~10월엔 단 2건에 그쳤다”며 “올해 ‘2·4 공급대책’ 발표 전 3개월 동안에도 거래량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비정상적인 거래량 등락은 공공 정보의 유출이나 공유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