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표준지와 표준 단독주택의 내년도 공시가격이 올해 시세 상승분보다 3배가량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된 매매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으로 실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한 것보다 공시가격이 훨씬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22일 서울 일대 주택가 모습./김연정 객원기자

2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전국 지가(地價)는 3.47% 올랐다. 11~12월 상승분을 감안해도 연간 상승률은 3%대 후반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날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표준지 54만 필지의 내년 1월 1일 기준 공시지가는 10.16% 올랐다. 올해 땅값 상승률의 3배에 달하는 것이다. 단독주택 공시가격도 마찬가지다. 올해 11월까지 전국 단독주택 매매가격은 2.9% 올랐는데, 표준 단독주택 24만 가구의 내년 공시가격 상승률은 전국 평균 7.36%로 매매가 상승률을 훌쩍 뛰어넘는다.

◇땅값 3.5% 올랐는데 공시지가는 10% 올라

공시가격 급등으로 인한 ‘세금 폭탄’ 논란은 아파트와 연립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공개되는 내년 3월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주택은 전국 1400만여 가구로 전체 가구 수(2000만 가구)의 70%에 달하는 만큼,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파급 효과도 크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억’ 소리가 날 정도로 오를 전망이다. 부동산원 집계로 올해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13.73% 올랐다. 2004년 통계 집계 후 역대 최고 상승률이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값이 7.57% 올랐지만, 올해 공시가격은 19.1% 올랐다. 국토부가 올해와 같은 기준으로 내년 공시가격을 매긴다고 하면, 상승률이 20%대를 넘어서 30%대까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올해 토지·주택 매매가격 변동과 내년도 공시가격 상승률

이처럼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보다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정부 정책 영향이 크다. 정부는 작년 11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수립하고, 토지와 주택의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토지의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은 2020년 65.5%에서 2028년까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은 69%에서 2030년에 90%까지 올리기로 했다. 작년 기준 53.6%에 그친 단독주택 현실화율은 2035년 90%로 높일 예정이다. 정부 로드맵에 따라 해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2~3%포인트씩 상승, 땅값·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내려도 공시가격은 오르고 세금 부담도 덩달아 늘어나는 구조다.

공시가격은 보유세, 건강보험료 등 60가지 넘는 행정 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에 국민 부담으로 직결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 들어 올해까지 4년간 전국 주택 공시가격이 40% 가까이 오르면서 가구별 보유세가 많게는 2~3배 급증했고, 상당수 은퇴 세대가 건강보험료나 기초연금 혜택을 잃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집값이 곧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공시가격은 집값보다 더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은 증세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유세 부담 더 가파르게 늘 수도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격이 비쌀수록 세율이 더 높아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일부 납세자는 공시가격 상승률보다 훨씬 큰 폭으로 늘어나는 세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 예컨대 서울 성동구 A아파트 전용면적 84㎡의 공시가격이 올해 11억5400만원에서 내년 20%가 오른다고 가정하더라도 보유세는 371만원에서 528만원으로 42% 급증한다.

다만, 정부가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올해 공시가격으로 내년 보유세를 산정하거나 고령자의 종부세 납부를 유예하는 등 대책을 준비하고 있어 내년 세금 부담이 예상보다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시적인 감면 조치가 끝나면 몇 년 치 공시가격 상승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2023년 이후에는 더 큰 세금 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시가격 과속 인상 정책이 계속되면 늘어난 세금을 집값이나 임대료에 전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긴 안목으로 부동산 관련 세금 체계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0시부터 공개되는 표준지와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다음 달 11일까지 ‘부동산 공시가격알리미’ 홈페이지와 해당 시·군·구청 민원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시가격에 대한 의견은 홈페이지나 담당 감정평가사(표준지) 또는 한국부동산원 지사, 시·군·구 민원실에 제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