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과 창신동 상권을 성공시킨 비결이요? 익선동은 ‘100년 한옥마을’, 창신동은 ‘절벽마을’이라는 지역적 스토리와 색깔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공간 개발 전문가인 유정수 글로우서울 대표는 “두 지역에는 서로 겹치는 매장이 하나도 없다”면서 “건물 가치를 높이려면 동네가 가진 특색과 분위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콘셉트의 매장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우서울이 만든 디저트 카페 ‘청수당’(위쪽) 풍경과 창신동에 만든 도넛 가게 ‘도넛정수’. 서울의 낙후 지역을 개발해 SNS 명소가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우서울

그는 서울 종로구 익선·창신동, 대전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마을 등 낙후된 일반 마을을 핫플레이스로 개발해 이른바 ‘소셜미디어(SNS) 성지’로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글로우서울은 가치가 떨어진 부동산에 새 숨결을 불어넣어 되살려내는 공간 설루션 기업이다. 슬럼화가 극심한 마을, 공실률 높은 빌딩, 장사가 안되는 쇼핑몰 등이 주요 고객이다.

유 대표는 오는 22일 개강하는 땅집고 ‘꼬마 빌딩 실전투자스쿨 5기’ 과정에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상권과 가치 투자’를 주제로 강의한다.

◇”한옥은 또 지어도 100년 역사는 못 만들어”

유 대표가 손댄 첫 작품은 익선동이다. 2010년까지 익선동은 낡은 한옥이 밀집한 동네였다. 1920년대 전후부터 지은 15평 미만 작은 개량 한옥이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한옥을 개조한 작은 카페와 액세서리 가게가 들어왔지만 상권이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었다. 유 대표가 익선동을 주목한 시기는 2018년. 당시 정부는 익선동을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했다. 유 대표는 익선동이 가진 가치를 정확히 꿰뚫어봤다. 그는 “익선동은 남산 한옥마을이나 북촌보다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다”며 “한옥촌은 아무데나 또 지을 수 있지만 100년 역사는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옥밀집지역 지정으로 새 건물을 짓기 어려워진 것도 익선동 가치를 높였다.

유 대표는 익선동 개성을 살린 독특한 매장을 대거 개발했다. 일식당 ‘송암여관’, 샤부샤부 식당 ‘온천집’, 디저트 카페 ‘청수당’, 태국음식점 ‘살라댕방콕’ 등 자체 식음료 브랜드를 기획·개발했다. 송암여관은 1970년대 유명 요정 ‘송암’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당시 쓰던 가구 등을 고스란히 가져와 과거 분위기를 살렸다. 모든 매장에는 좌석을 줄이고 자연 공간을 최대한 넣었다. 물이 흐르는 돌다리, 잉어떼가 있는 작은 연못, 온천 등을 배치했다.

익선동은 현재 부동산 가치가 4배쯤 뛰었다. 땅값은 2016년 3.3㎡(1평)당 2000만원에서 2019년 7800만원으로 올랐다. 유동 인구도 2018년6월 하루 42명에서 지난해 6월엔 4230명으로 100배 이상 늘었다.

익선동에 이어 유 대표가 주목한 곳은 창신동. 서울 대표 쪽방촌인 창신동은 해발 120m 언덕배기에 있어 누구도 상권 성공을 보장하기 힘든 곳이었다. 유 대표는 창신동의 독특한 풍경인 절벽마을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태국음식점 ‘밀림’, 디저트 카페 ‘도넛정수’ 등을 기획해 최고의 SNS 상권으로 만들었다. 유 대표는 “서울에서 창신동보다 야경이 좋은 곳은 없다”면서 “단순히 높아서 잘 보이는 게 아니라 동대문 성곽이 있어 건물을 높게 못 지으니 영구 조망이 확보된다”고 했다.

경기도 의왕시의 롯데프리미엄아울렛에 들어선 ‘타임빌라스’. 글로우서울이 백운호수, 바라산 등 자연경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글로우서울

◇잔존가치 높은 곳은 하락기에도 안전

유 대표는 어떤 기준으로 투자할만한 부동산을 가려내는 걸까. 그는 “잔존가치 평가 방법을 알아야 손해보지 않는다”고 했다. 잔존가치는 유동 인구를 제외하고 지역 자체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뜻한다. 부동산 상승기에는 땅이 가진 가치가 잘 보이지 않는데 잔존가치가 있으면 하락기에도 가격이 방어돼 안전하다는 것. 익선동은 100년 된 한옥마을이, 창신동은 절벽마을을 통해 볼 수 있는 야경이 각각의 잔존가치인 셈이다.

매장 유치 노하우는 어떨까. 그는 “지리적 환경을 잘 살릴 수 있는 MD(상품기획)를 기획하고 적합한 브랜드가 없으면 아예 새로 만든다”고 했다. 기존 프랜차이즈만 넣으면 상권이 뻔해지고 경직돼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권 양극화가 더 극심해진다고 내다봤다. 속칭 사진빨이 좋은 SNS 상권은 뜨고 일반 상권은 몰락한다는 것. 그는 “젊은 세대는 특정 핫플레이스를 방문해 자신을 알리려는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면서 “생필품 파는 동네 상권은 10년 안에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