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서 전세살이 중인 오모(40)씨는 올해 말 전세 만기를 앞두고 근처 아파트를 사려고 알아보다가 포기했다. 오씨는 “전세 보증금에 보금자리론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려고 했는데, 주변에 6억원 이하 아파트는 10평대뿐”이라며 “아이 둘을 키우기엔 너무 좁고, 대출 금리도 작년의 두 배 수준으로 올라 내 집 마련 계획을 접었다”고 했다.

서민용 정책 모기지 상품인 ‘보금자리론’ 금리가 5%에 육박하고, 서울에서 6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의 씨가 마르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보금자리론은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원(신혼부부는 연 8500만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시세 6억원 이하의 주택 구입 자금을 최대 3억6000만원까지 고정금리로 빌려주는 상품이다. 청약 당첨이 어렵고, 현금 여력이 없는 30~40대 서민 실수요자 입장에서 사실상 유일한 내 집 마련 수단으로 통했다. 하지만 집값이 급등하면서 보금자리론이 서울에선 ‘빛 좋은 개살구’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6억 이하 아파트 5년 새 70만가구 ‘증발’

서울 아파트 121만여 가구의 시세를 집계하는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서울에 6억원 이하 아파트는 9만1750가구로 전체의 7.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만 해도 서울 6억원 이하 아파트 비율은 61.7%(78만7277가구)에 달했다. 지난 정부 때 서울 아파트 값이 치솟으면서 서민 수요자들이 찾는 중저가 아파트 약 70만 가구가 증발한 것이다.

지역별로 보면 강북구에서 6억원 이하 아파트가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2017년엔 강북구 아파트의 98%가 6억원을 밑돌았는데, 지금은 6.5%만 남았다. 5년 전만 해도 강북구 등 서울 8구(區)는 6억원 이하 아파트 비율이 95%를 넘었다. 하지만 7월 현재 도봉구(32.9%), 금천구(25.9%), 노원구(21.9%) 등 6곳을 제외한 모든 자치구에서 6억원 이하 아파트 비율이 10% 밑으로 떨어졌다. 성동구는 5년 전엔 전체 아파트의 절반 정도(48.7%)가 6억원 이하였는데, 지금은 단 한 가구도 없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6억원 이하 아파트는 대부분 전용면적이 59㎡에 미치지 못하는 초소형이거나,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구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신혼부부들이 보금자리론이 되는 6억원 이하 아파트를 알아보러 왔다가 매물을 확인하고는 실망해서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금자리론 대상 주택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10억9222만원에 달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소한 9억원 이상으로는 올려야 실수요자들이 보금자리론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금자리론 신청 작년의 4분의 1로 급감

가파르게 오른 보금자리론 금리도 서민들의 내 집 마련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보금자리론 금리는 7월 기준으로 연 4.5~4.85%로, 2012년 8월 이후 9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작년 1월(2.6%)과 비교하면 금리 상단이 2.25%포인트나 올랐다. 보금자리론은 대출 만기까지 금리가 고정되고 금리 인하 요구권이 따로 없어 나중에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대출 실행 당시의 금리로 만기까지 갚아야 한다.

시중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보금자리론 금리도 5%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보금자리론 금리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국고채 5년물 금리가 재차 상승할 가능성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정부의 민생 안정 기조에 따라 금리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면서도 “시장 금리 향방을 지켜보며 조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출로 사들일 수 있는 집이 줄고, 원리금 상환 부담도 커지면서 보금자리론 신청 건수는 급감하고 있다. 올해 1~5월 서울 지역 보금자리론 대출 건수는 1496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5998건)의 4분의 1 수준이다. 2020년(2만690건)과 비교하면 93% 줄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서민 실수요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납부하는 거치 기간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