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외벽에 재건축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지은 기자

[땅집고] “한강변 입지에 일자리 많고, 대형 상업시설까지 낀 여의도가 앞으로 50~60층 새아파트로 채워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야말로 강남 뺨치지 않겠습니까.”

국내 금융산업의 중심지로 꼽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는 핵심 업무지구가 형성돼 있고 한강을 끼고 있어 집값이 34평 기준 20억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대부분 1970~1980년대 지은 오래된 아파트여서 주거시설은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 22곳 중 74%(16곳)가 올해로 준공 40년이 넘었을 정도다.

여의도는 노후아파트 비율이 유독 높은데도 그동안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주민들은 그 이유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문이라고 했다.

박 전 시장은 2018년 7월 여의도와 압구정을 묶어서 통개발하는 구상안을 내놨다. 개발 소식이 발표되자 예상대로 여의도 집값은 급상승했다. 이에 놀란 박 전 시장은 통개발 구상안 발표 한 달만에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하다’며 지구단위계획수립 절차를 무기한 보류시켰다. 이 때문에 여의도 일대 재건축 사업은 ‘올 스톱’ 됐다.

상실감에 빠진 여의도 일대 재건축 시장에 최근 다시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제시한 ‘신속통합기획’ 제도를 활용하려는 단지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사업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오 시장이 한강변에 짓는 새아파트 층수 제한인 ‘35층 룰’까지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여의도 일대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사업 속도 가장 빠른 시범·삼부·한양, 최고 50~60층 변신 준비

[땅집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시한 신속통합기획 제도를 적용할 경우 재건축 사업 기간이 1~2년 줄어든다. /이지은 기자

여의도에서 재건축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아파트는 총 15곳으로 추산된다. 이 중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단지 3곳(시범·삼부·한양)이 모두 ‘오세훈표 재건축’으로 불리는 신속통합기획 참여를 확정했다.

서울시가 정비사업 수립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지원하는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면 인허가 속도가 빨라진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진행했던 건축·교통·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한 번에 받을 수 있고, 정비사업 소요 기간이 기존 5년에서 2년 내로 단축할 수 있다.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시범아파트’다. 1971년 입주해 올해로 준공 52년째다. 총 1790가구 규모로, 여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낡은 단지다. 시범아파트는 2017년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고 재건축이 확정됐는데, 지난해 11월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하면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발표한 신속통합기획 초안에서 시범아파트 용적률을 기존 172%에서 최고 400%으로 상향하고, 최고 60층까지 짓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강변에 들어서는 동은 인근 조망권을 고려해 20~30층이 될 수 있다.

1975년 준공한 한양아파트(588가구)도 지난해 말 신속통합기획 단지에 선정됐다. 한양아파트는 2017년 안전진단을 통과한 뒤 4년여 동안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점을 고려해 신속통합기획 참여를 결정했다.

한양아파트는 조합이 아닌 신탁사가 시행을 맡는 신탁 재건축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인데, 지난 1일 영등포구청으로 조합설립 인가에 해당하는 사업자 지정을 통보받았다. 여의도 내 신통기획 참여 아파트 단지 가운데 ‘1호 재건축’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현재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적률이 252%인데,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한 뒤 용적률을 600%로 높여 최고 50층, 총 1000가구 이상 대단지로 변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땅집고] 여의도에서 재건축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시범아파트'다. /조선DB

한양아파트와 같은해 입주한 삼부아파트(450가구)도 지난 6월 신속통합기획에 합류했다. 당초 지난해 말 신청했다가 서울시로부터 보류 처분을 받았는데, 올해 다시 대상지로 확정 통보를 받았다. 이에 따라 앞서 시범·한양에 이어 신속통합기획에 따른 정비계획안 수립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과 맞붙어있어 입지가 좋다고 꼽히는 광장아파트(744가구)도 지난 6월부터 신속통합기획 참여를 위한 주민 동의서를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나루역 초역세권 ‘공작’, 통합 재건축 ‘화·장·대’ 사업 속도

신속통합기획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곳도 여럿 있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초역세권 입지인 공작아파트(1976년•373가구)가 대표적이다. 현재 최고 12층인 소규모 단지인데 재건축 후 최고 49층, 총 555가구로 탈바꿈할 계획을 세웠다. 최근 영등포구청에 정비계획안을 제출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상정을 앞두고 있다.

‘화장대’로 불리는 화랑아파트(160가구), 장미아파트(196가구), 대교아파트(576가구) 3곳은 통합 재건축을 진행 중이다. 이들 단지는 지난달 2일 대교•장미•화랑 통합 재건축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당초 각 단지 가구수가 많지 않아 개별 재건축으로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3곳을 합해 총 932가구가 재건축 후에는 2300여가구로 탈바꿈할 수 있어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단지는 사업 속도를 내기 위해 신속통합기획 참여도 고려 중이다.

[땅집고] 여의도 대교 아파트에 재건축 사업 설명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지은 기자

삼부아파트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려다 무산사태를 겪은 목화아파트(312가구)는 재건축조합 설립을 위한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초역세권이면서 현대백화점과 가까운 서울아파트(192가구)는 가구수가 적지만 상업지역 입지를 최대한 살려 최고 76층, 총 300여가구 주상복합으로 탈바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의도 일대 노후 단지들이 재건축 사업에 성공할 경우 여의도가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과 맞먹는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새아파트가 부족하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으로 꼽혔는데, 재건축으로 이 점이 해소되면 ▲핵심업무지구 ▲한강 조망 ▲‘더 현대 서울’ 등 대형 상업시설까지 갖춘 최상위 지역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여의도 일대가 새아파트촌으로 바뀌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땅집고 자문단은 “최근 신속통합기획 등 제도로 여의도 재건축이 체감상 속도를 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질적으로 조합 설립까지 마친 곳이 ‘시범아파트’와 ‘광장아파트’ 두 곳뿐”이라며 “나머지는 아직 추진위원회 단계기 때문에 사업이 본격 가시화하려면 좀 더 기다려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